뒤 돌아보니(10).....
뒤 돌아보니 2005/10/01 01:23   http://blog.azoomma.com/nayamina/206329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고 나면 그 환경에 안위하듯이 내가 딜러로서의 삶에 서서히 안위하게 될 즘, 남편이 직장을 잡게 되었다.

 

그건 분명 축하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에겐 예상치 못한 갈등의 시작이였던 것이다.

 

예전처럼 가정에서 서로가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가야만 할 시간....

남편은 경제부(?) 장관으로서, 나는 내무부(?) 장관으로서의 의무들을 다시 이행해야 할 시간.....

 

설령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린 충분히 예전의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난 이미...

세상(?)을 알아 버렸고....

돈(?)을 알아 버렸고....

자유(?)를 알아 버렸고.....

숨겨져 있던 나의 용기(?)를 발견했기에 절대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쩝~

 

남편의 몫이였던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이 나의 몫이 되었던 그 어느날 부터, 차돌처럼 단단해져 가는 나의 고집(?)으로 인한 우리 부부의 충돌은 본격적으로 서서히 시작되어갔다.

 

토막 수면(?)으로 인해 매일 예민해져 있는 난, 나만의 유일한 시간이 되어준 직장에서의 8시간으로 해소를 했고....

가족을 위한 음식재료(?)들 보다 장바구니 속에 더 많이 담았던 한국 드라마 비디오들.....

나 역시 느끼지 못할 정도의 비디오 폐인(?)이 되어가며 남편의 불평(?)들을 못들은 척 했고..

방과후 아이들은 나의 모자랐던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 방치되었고....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갔던....

나의 낯선 이 모습들..... 흠~

....

이제사 마누라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남편은 나에게 서서히 태클(?)를 걸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게 던진 그 불만들로 내가슴이 이기적(?)으로 답답해 질때면 기꺼이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우리 시엄니와 시누님......

철이 없었던 난, 당신의 귀한 자식 험담에도 늘 웃으며 미안해 하셨던 시엄니의 지혜(?)의 참뜻을 깨닫지 못한 채 점점 기고만장하고 간땡이가 엄청나게 부어가는 무서운(?)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쩝~

 

일하는 부인(?)에 대한 안스러움은 기세 등등한 마누라(?)에 대한 불평 불만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낸 그 쓰디쓴(?) 언어의 양들 만큼 나는 내안의 괴물(?)들을 키웠던 것이다......

 

그렇게 남편과 난 가정이란 사각 링에서 관중없는 1라운드를 시작으로 휴식없는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느 한쪽의 심장이 멈추기를 기다리듯.....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필요 없었다.

 

비록 얼굴에 터진 핏자국은 없었을지라도 서로의 마음엔 이미 주고받은 강력펀치(?)의 흔적들로 갈기 갈기 찢겨져 있었고, 보다 못한 심판이란 아이들의 만류로 우리의 싸움은 간간이 형식적인(?) 휴식기를 맞이하곤 했던 결혼 10주년의 해......

 

난 점점 가족들을 위한 식사 준비보다 외식의 횟수를 늘렸고, 아이들 필요한 학용품(?)보다 나만을 위한 향수(?)를 구입하며 내 노동의 댓가로 떳떳하게 지출할 수 있다는.... 그때의 그 현실들이 남편으로 부터의 경제적 독립은 물론 정신적 독립을 가능하게 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치열했던 그때, 남편과의 전투는 아이들의 존재(?)로 남과 북에 그어놓은 한줄의 38선 처럼 휴전을 약속했지만 내속엔 남편이 상상하지도 못했을 '이혼'이란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가족을 위한 음식을 장만하던 투박한 손에 로션을 더 이상 바르지 않았고, 손질된 손톱위에 색깔(?)을 입히는 나의 낯선 모습에 걱정(?)을 숨긴 총부리(?)를 겨누었던 남편을 먼저 원망하며 난 내안의 그 무서운 괴물- 나를 파괴하고 내 가족을 파괴 했을지도 모르는- 의 실체를 여전히 보지 못했던 것이다, 멍청하게도.... 흠~)

 

사실 그 도시엔 이혼녀와 이혼남이 타도시에 비해 많다는 신빙성 없는 연구조사와 급행결혼식(한시간만의 초특급 결혼식이 성행되고 있기 때문에..)의 천국답게 이혼 역시 간단했던 라스베가스 도시의 특성(?)과 더불어 주변의 제약받지 않은 싱글들에 대한 환상 때문이였을까?

어쩌면 내게 주홍글씨(?)가 될 이혼녀라는 것이 그리 부끄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뻔뻔스러움이 나를 더 과격(?)하고 과감(?)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던 것 같다.

하물며.....무엇보다도 내 능력 이상의 수입이 보장되어 있었으니깐.....

 

좋은 점이자 내겐 버거운, 평범 이상의, 곧은(?) 성품의 남편은 아내의 급작스러운 그 모든 추한변화(?)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고, 여전히 나의 일방적인 '포기'만을 요구하면서 나의 숨통을 죄여오기 시작했다.

조여온 나의 숨통은 시엄니와 시누의 정신적인 지지로 조금씩 트일수 있었고, 아마도 그때 그분들의 지혜가 아니였으면 우린 화해의 결혼 10주년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95년 끝자락....

남편과 아내로서의 삶, 10년차....

지난 일년간 치열한 전투로 인해 소모해버린 삶의 에너지가 거의 바닥이 나고 있을때, 10주년이란 의미는 우리 둘에게 조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던 시간으로서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근사한 식당에서의 만찬..... 

가격과는 상관없는 의미있는 반지...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담긴 편지.....

 

그것들은 10주년을 되새김질(?) 하기에 충분했고, 등 돌리려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일방적으로 할 수 있었던 진실(?)과 최선(?)의 그 '화해 제스처'는 나의 눈물샘과 마음을 자극했다.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로 씻겼을까?   

어느 순간....난 마음의 시야로 엄청나게 추하게 변해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는 괴물(?)의 모습과 함께......

 

내 가슴(?)의 눈을 서서히 뜨려는 작은 흔들림으로 인해 내안의 지혜(?)를 삼켜버렸던 그 괴물은 그렇게 서서이 잠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후로 5년동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