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지노.....
출입하는 입구엔 문(door)이 없고, 호텔 프론 데스크를 제외하곤 그 어느 곳에서도 시계를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리고 24시간 항상 똑같은 조명으로 밤과 낮을 구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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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찌개를 끓이는 스토브(?)와 내 가족을 위한 음식을 저장하는 냉장고(?)와 갖가지 종류의 많은 식기(?)들과 칼(?)과 도마(?)에만 친숙해져 있던 내가, 현금을 대신한다는 우스워 보인 칩들과 커다란 테이블 위에 깔린 수십장의 카드들을 자유자재로 만질만큼의 상상도 못한 변화(?)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 '카지노'에서..... 
'카지노'의 특정상 3교대 근무여서 싱글들과 달리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기에 근무하기 제일 수월한 밤시간(저녁 8시~ 새벽 4시)대에 일을 하기로 했다.
딜러로서의 근무환경은 그동안 짬짬이 해왔던 자유로운 알바(?)에 비해 정해진 시간들의 제약은 있었지만 육체적으론(?) 그리 힘이 들거나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관광 도시답게 주말이 더 바쁘기에 나의 휴일은 주말이 아닌 주중이였고 아이들과 제대로 된 휴일을 보내는 시간만이 그 만큼 줄어 들었을 뿐....
좋은 의도로 시작한 나의 외도(?)는 흔쾌하게 승낙한 남편의 육아 전담으로 맘 편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새벽 4시, 칼퇴근하고 귀가 시간 4시 30분경.... 새벽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취침시간은 다음날 정오를 넘겨야 기상 시간이 되었고, 그 사이 아이들 등하교 시간은 늘 엄마의 부재(?)로 아빠만의 몫이 되었다.
이 낯선(?) 생활패턴이 우리 가족 개개인에게 어색할 수 있었지만, 그 도시 특성상 옆집(?)도, 윗집(?)도 다 그러하기에 정해진 역할에 각자 충실하기로 했다, 마치 무대위 연극 배우처럼......
익숙하기 전까지 낮과 밤이 바뀐 생활들이 가끔 힘들었지만, 주부로서 일정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한 피로(?)는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내 순수한 노동의 댓가(?)....
액수에 상관없이 난 그간 억눌려 있던,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부푼 기대만으로도 날아 갈듯이 기뻤다.
시엄니께는 항상 떳떳하게 드릴 수 있는 $100(?)이지만 어쩌다 한번, 친정엄마 손에 쥐어드리는 $20(?)엔 늘 미안함과 슬픔(?)과 수치심이 있었는데.... 쩝~
이제 그런 마음이 안들 것 같은 현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흥분하고 있었다. 
배짱만 두둑했던 신입 딜러시절이였던 94년의 1월......
딜러로서 쓰는 속어들을 몰라 가끔 매니저 얼굴을 멀뚱 멀뚱 쳐다보며 나보다 상대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던 햇병아리 시절......
어리버리한 귀머거리(?)와 벙어리(?)였던 난, 생리학적(?)으로 발달한 9단의 눈치(?)로 차츰 노련한 딜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떼어낸 달력의 장수가 늘어나는 숫자만큼....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리고........
손가락, 발가락을 총동원해야 하는 노랑머리(?)들의 느려터진 덧셈방법보다 전자 계산기(?)에 가까운, 작고 통통한 동양 여자의 정확한 암산은 뒤에서 지켜본 매니저들 눈에 띄이기에 충분했었나 보다.
버버벅 거리는 영어에도 성실하게 답해주던 고참 딜러들 덕분으로 학교에서 배운 여러가지 게임들외 중요한 게임들을 더 배울 수 있었던 그 흥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8시간 동안 직장에서 지내는 시간이야 말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알았던 그 순간 표현하기 어려운 쾌감으로 난 서서히 '일'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쉴새 없이 가주는 시간은 나에게 노련함을 선사했고, 차츰 딜러란 직업에 익숙해질 무렵, 거의 모든 긴장이 사라짐과 동시에 엄마의 부재로 인한 내 자식들에 대한 안타까움 또한 그와 함께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었다. 흠~
(물론 믿을만한 남편의 주부역할(?) 때문이기도 했지만 난생 처음(?) 제대로 된 직장서 무능한줄만 알았던 '아줌마'로서의 만만치 않았던 수입(?)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 본다.
)
나의 새벽 귀가(?)운전은 남편을 노심초사 하게 만들었고, 안스럽게 보인 내가 다시 주부의 자리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남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난 직장내에서의 제약없는 나만의 즐거움(?)과 인정받게 된 오만함(?)으로 자꾸만, 자꾸만.....고집이 센 아줌마가 되어갔다.
이렇게......
우리가족의 둥지에서 나의 빈자리가 소리없이 점점 커져가고 있을때.....
임시 백수(?)였던 남편은 회복중이셨던 아버님을 대신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로 마누라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채 분주하게 보냈다.
쌓여있는 서류들을 정리해 드려야 했고, 운전을 못하시는 시엄니 대신 아버님의 기사가 되어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에도 가야했고, 장도 봐들여야 했고.....
직장다운(?) 직장을 신나게(?) 다니는 마누라를 대신해 아이들도 돌봐야 했다.
얼마후, 다시 직장에 나가시게 된 아버님으로 인해 시댁에서의 남편의 의무(?)들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감사하게도....
그만큼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반면 난 그 시간(?)속에 늘 불참했던 무늬만 아내요, 엄마였다.
나의 부재를 보충하듯, 남편은 아이들에게 ABC(?)를 가르치는데 극성(?)과 닥달(?)을 했고 그 덕에 아주 빠른 속도로 미국아이(?)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거기 맞춰 나 또한 아주 빠른 속도로 직장인이란 올가미(?)에서의 달콤한 맛(?)을 느끼게 되었다.
'성실'엔 '거짓'이 없듯.....
꾀부리지 못하는 나의 타고난 성격(?) 때문이였는지 난, 동기들보다 조금 빠르게 시내 중심에 위치한 제법 큰 카지노로 옮기면서 차원이 고급스럽게(?) 다른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설레임으로......
그렇게 나의 飛翔을 위한 날개를 가듬으면서 난 '9년차 아줌마(?)'라는 이름표를 슬그머니 감추기 시작했고 그 이름표를 떼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뛰어들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95년을 맞이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있었다.....
Three! Two! One! Zero!!! 땡땡땡~~~ Happy New Year!!!!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