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보니(6)...
뒤 돌아보니 2005/09/27 12:34   http://blog.azoomma.com/nayamina/205902

 

 

드디어 아줌마로서의 삶이 6년째가 되다 보니 아이들 유치원 입학과 동시에 내겐 일상에서의 짧은 탈출을 할 수 있는 보너스(?)가 생기게 되었다.

 

아들넘들의 새로운 재롱과 성장하는 변화들 만큼이나 난 서서히 조폭엄마(?)가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은 대신 그동안 숨겨 놓았던 내 열정이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음을.....

아마 얼마남지 않은 한국생활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였지 싶다....

(마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처럼 왜 그리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지.. 원~)

 

그런 이유를 찾고부터 아이들을 위해 난 우리집에 자리잡고 있던 모든 사물들에게 이름표(?)를 붙여놓고 당근(?)과 채찍(?)으로 아들넘들에게 한글 배우기를 닥달(?)했고, 준비된(?) 유치원생으로 만들었던 극성의 그해 봄..

아이들 입학비와 날 위한 문화 센터 수강비를 함께 지불하며, 기다리고 고대했던 나만의 짧은 일탈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아이들과 같은 시간의 출퇴근(?).... 

완벽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들..  비록 길진 않았지만 할 수 있었던 그 무엇들은 많았다. 

어쩜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이였기에 일초의 소중함을 느꼈고, 그 덕에 난 유별나게 시테크(?)를 하는 아줌마가 되었나 보다..

 

짬짬이 중독성(?)이 강한 방송의 매력도 느껴보며, 그렇게 쌓은 인맥으로 서서히 넓혀져 가는 아줌마로서의 이유있는 외출이 잦았던 나의 화려했던 꿈같은 봄날(?)....

 

남편의 해외 장기 출장이 잦았던 그 때, 남편에 대한 걱정은 그저 형식(?)에 불과했었던 것 같은 난, 아주 철저하고 이기적이였고, 육아와 생활.. 그 어느 것에도 소흘하지 않으려 했던 욕심많고, 배짱좋고, 겁없는 6년차 아줌마였다. *^_^*

 

하지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의 시놉스같은 내 생활은 협심증이란 진단으로 생명을 보장받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계셔야만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 그 때...... 원치 않았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흠~

 

외국서 공부하던 동생이 방학동안 일시 귀국해 있었고,  다시 외국 출장이 잡혀 있던 남편, 그리고 미국에 계신 시부모님 댁 방문을 앞두었던 나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가족촬영을 하자고 유난히 서두르셨던 아버지...

 

촬영했던 그 가족사진의 인화지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아버진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고, 당시 외국에 다들 나갔던 자식(?)이란 이름의 우리들은 며칠만에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곤 유일하게 옆에 있어줬던 오빠와 엄마와 함께 그저 병실 밖에서 흐르는 눈물을 서로 닦아 주는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으로 하나님도 찾고, 부처님도 찾고, 성모 마리아님도 찾게 된 염치없는 속물이 되었지만 매순간의 간절함은 창피하거나 뻔뻔하다는 감정들을 망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쩝~

 

절망속에 있던 모든 가족들은 각자 神에게 절실한 조건(?)들로 아버지의 생명을 보장받길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는지 神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주치의도 놀란 당신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셨고 그후 10년이란 보너스 삶을 더 사시게 되었다.

 

간접적이지만 生 과 死 사이...

난 그곳서 삶에서의 중요한 우선 순위를 배우게 되었고, 치켜들고 다녔던 콧대(?)를 차츰 내리며 겸손이란 글자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 늦기전에....

 

무섭고(?) 두려웠던 그 해를 보내면서 'Lucky 7' 이 희망을 제시하듯 난 아줌마 경력 6년에 대한 자부심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겸손을 약속하며 조심스럽게 다음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