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보니 (4)....
뒤 돌아보니 2005/09/25 03:22   http://blog.azoomma.com/nayamina/205631

 

 

수입신부(?)에게 주어진 황금같은 고국에서의 생활...

 

일년에 한두번 서는 아파트 주차장 앞 장터에서 구입한 두개의 만원짜리 고리바지는 4년차 아줌마 유니폼으로 아주 제격이였다.

 

일분 일초가 아까워 칭얼대는 작은넘 자동 그네에 태워놓고, 뺀질 뺀질 말 안듣고, 슬그머니 일저지르는 큰 넘이 성가시게 할지라도 지점토를 가르쳐 주겠다는 친구를 기꺼이 맞이하며 만들어냈던 서투른 작품(?)들...

아마 이것을 시작으로 난 조급했지만 성실히 고국에서의 정해진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흔치 않았던 영유아 수영교실이라는 곳에 이제 막 기저귀를 뗀 큰녀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난 철저하게 한국의 극성스러운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미국가면 못하니깐..... '라는 불안하고 초조했던 이유로 눈 부라리며 살아가던 그해...

4년째 접어드는 아줌마의 에너지가 극에 달하기 위한 출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꺼지지 않는 나의 열정적인 생활들에 비해 오랜 미국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남편의 한국생활은 TV속 손자병법(당시 남편이 즐겨보던 한국 드라마였는데 남편은 그걸 통해 나름대로의 한국 직장 생활에 대한 꿈을 갖었던 모양이다. 쩝~)에서 보여준 거와는 달리 비생산적(?)인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쓸만한 인재들에 대한 실망이 컸었다. 

 (나이가 들어도 어쩔수 없는 애들인갑다, 니편 내편 가른다는 얘길 듣고 보니.......)

 

너무나도 뚜렷한 수직관계(?)인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학연, 지연, 혈연..하곤 전혀 상관없이 철저히 개인의 능력 위주였던 미국에서의 직장 풍토에 익숙해져 있던 남편의 사회성....

그런 그는 납득이 되지 않아 생겨나는 생각의 차이(?)들을 극복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야 했기에 결국 생소한 '신경성 위장병'이란 훈장을 오랫동안 가슴에 달게 되었다.  쩝~

 

이젠 거꾸로 한국에 수입된 신랑...

일방적인 남편의 희생(?)만큼 난 행복했지만 그 행복이 깨질까봐 이기적인 반쪽(?)이 되면서 부터 일부러 모른척하며, 5년뒤 다시 해야 할 내 미국생활에 대한 남편의 간접 삶의 체험 현장(?)을 방관해 버렸다. 

(그래서 난 악처다... 소크라테스 아내도 악처였단다.. 하지만 남편은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자가 아니다.. 고로 난 악처가 아니다.... 위로하는 나만의 방식!!! (>_<)

 

"...♪♬♬  입장바꿔 생각해봐  ♪♬♪...    ......♪....♬♩♪...."

라는 김건모의 핑계를 들으며.....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거.. 것도 바다를 건너 문화가 다른 곳으로 옮기고 정착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일년이란 세월이 걸렸고, 그 무렵 미국에 계신 시부모님이 15년만에 고국을 방문하게 되셨다.

 

난 젤 먼저 시엄니를 모시고 목욕탕으로 향했고, 손닿지 않은 등 한가운데 맺혀있던 세월의 恨을 조심스레 닦아드렸고,  미장원에 가서 타국에서 기른 외로움과 그리움이 꽉 차여있던 긴 머리를 자르고 퍼머를 해 드렸다. 

비록 외모의 변신이 지난 긴 시간들을 되돌려 줄 수 없었을지라도.... 

 

아줌마란 이름표를 목에 건지 4주년...

시부모님들의 방문을 시작으로 대가족 모임을 위한 음식 장만의 손길이 차츰 빨라지기 시작한 걸 보니 이제 서서히 아줌마 초급반을 졸업할 때가 되었나 보다.

 

자칫 교만해질 수 있는 아줌마 중급반(?)에선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조심스럽게 아줌마 5년차 들어서는 커다란 문의 고리를 살며시 돌려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