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주년 아줌마 해를 맞이했던 볼티모어에서의 생활은 이용이란 가수가 진행하는 한국 라디오 청취로 즐겁기도 했지만 내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어느날..
라디오 뉴스를 통해 얻은 우연한 정보로 그해 여름 남편은 한국에 있는 모 대기업 연구소에 해외인력 1호(?)로 가게 되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몇해 전부터 갑자기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로 인해 그 당시 해외에 나가 있던 고급인력이라 불리던 많은 사람들의 고국행 역이민이 줄을 이었던 그해 무더웠던 8월....
난 둘째 녀석 출산을 한달여 앞두고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로 비행기를 탔고, 태평양을 건너온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내 몸을 먼저 풀게(?) 되어 버렸다. 
열달동안 딸이란 변함없는(?) 믿음으로 분만실에 들어간 난, 이번 셋째만큼은 꼭 아들이여야 한다는 어느 산모와의 뒤바뀐 소원을 들으며 마취에서 깨고서야 난 아들을, 그녀는 딸을 낳았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성 형제간이 훨 좋다는 주변의 억지 위로로 우울했던 어느날....
백화점에서 마주친 분만실 동기였던 세공주의 그 산모...
반가운 인사를 나눈뒤 아주 잠깐(?) 영화속 소재처럼 뒤바뀐 아이들의 운명을 그린 내 머릿속만의 줄거리를 그려 본 적이 있었던 끔찍한 고백을 해본다.
어쩜 그때까지도 어리버리한 엄마였기 때문에 내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는 내 안의 이기심이 먼저였던 초짜 아줌마의 철없던 시절....
뭐든 삼세판(?)이라더니 역시 3년차가 되어가는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는 그럴싸하게 자리잡혀가고 있었다.
동생을 심하게 탔던(?) 큰녀석이 점점 말라가고, 빠진 몸무게 숫자만큼 늘어가는 예민한 모든 것들로 인해 작은녀석은 태어나자 마자 혼자서 노는 연습을 일찌감치 하게 되어서 그런지 훨 수월하게 커 주었다, 기특하게시리...
대신 작은녀석은 한국생활로 인해 백일이며 돌이며 즈이 형보다 더 많은 가까운 친지들의 축하를 보상으로 받았고 나역시 한국에 사는 아줌마로서 해보고 싶었던 모든 생활 체험들(?)을 하나 둘씩 하기 시작했다.
남편 출근 동시.... 아줌마들의 티타임과 맛난 수다들....
두부 한모 사기위해 슬리퍼 신고 쪼르륵 슈퍼로 달려도 가보고....
명절이면 부담없는 친정식구들하고만의 모임...
(시댁이 미국에 있는 관계로... ㅎㅎㅎ)
정기적인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인한 짧은 외출들...
...
무엇보다 나의 희노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내나라 말(?)을 맘껏 할 수 있다는 거...
그 하나만으로도 개인 경력에 많은 손해를 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한국행을 결정해준 남편에게 머리에 이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이 세상 남녀간의 모든 열정이 담긴 사랑감정의 유효기간(?)이 최대 3년이란 어느 연구기관의 조사내용처럼 난 남편과의 사랑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버린 '가족'이란 울타리와 새로운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유효기간 없는 무한한 사랑을...
서서히 안정이 되어가는 3년차 아줌마의 한국서 시작한 생활은 이나라 기둥이 되고 있는 막강한 아줌마(?)가 되기 위해 네번째 해를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이 세계를 향해 요란하게 달려나갔던 그 해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