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남이였던 여자와 남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지난 일년...
교포인 남편 때문에 나의 신혼 생활은 미국 오렌지 카운티라는 곳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고, 한인들이 제법 거주하기에 그리 낯선 곳은 아니였다.
가까운 곳에 태평양을 볼 수 있는 바다가 있어서인지 내가 익숙하게 자라온, 내 가족이 살고 있는 한국과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해 봄...
신혼이란 글자에서 풍겨지는 달콤함을 만끽하기도 전에 난 바로 첫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마도 자연스러웠다기 보다는 가족계획에 대한 무지(?) 때문이였지 싶다.. 쩝~
얼떨결에 생긴 아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축하로 난 어리버리하게 엄마가 되어가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
유난히 역겨워 했던 냉장고 냄새, 지나가는 파란눈을 갖은 사람들 냄새(?)... 온갖 괴상한 냄새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날 괴롭히더니 어느날부턴 왜 그리 괴상한 음식들만 먹고 싶어지던지... 원~
예식장에서 단체로 주던 국적없던(?) 갈비탕....
다라이 밑에 깔려 있던 짓무른(!) 뻘건 딸기들....
다니던 대학교 근처 경양식 집서 팔던 정식 돈까스....
길거리 포장마차의 밀가루 떡복이....
.....
무엇보다 가장 먹고 싶었던 자판커피(일명 다방커피)....
임산부에게 좋지 않다는 커피라는 이유 때문이였을까? 왜 그리 더 마시고 싶어지던지..
사실 미국에 와서 마셔본 커피는 TV에서만 보았던 그 우아한 원두커피의 향(?)하고 전혀 다른, 익숙하지 않은 괴상한(?) 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래저래 먼 이국에서의 내 생활은 익숙해지기도 전에 입덧으로 고생을 했고, 몸도 정신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몸이 나약해지니 아마도 향수병(?)이란 놈이 슬그머니 내게 침투를 했는지 난 한국의 내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베개를 적시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그제서야 딸로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불효에 대한 용서의 눈물이였던 것을.....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초년병, 그 초년병 남편은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날 위해 내가 미국에 온지 100 일만에 한국에 데리고 나가 주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나의 친정 나들이는 지금까지 연중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난 길지 않은 첫번째 친정 나들이로 쌓여졌던 그리움을 풀어놓고 이별이 주는 아쉬움과 또다른 그리움을 다시 안고 돌아왔지만 불러오는 배만큼이나 내 첫아이와의 만남이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겐 아주 큰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친정 부모님의 첫번째 미국 나들이로 인한 만남의 기쁨과 내 아이의 축복받은 탄생으로 난 '엄마'라는 위대한 훈장을 가슴에 달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난 어리버리한 '일년짜리 아줌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