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끼리 어울려 산다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필수조건입니다.
내 가정을 만들기전까진 친구들과의 함께하는 삶이 중심이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면 주로 아이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놀이방이나 유치원을 다닐 무렵부턴 '엄마'라는 이름표를 단 우리들은
여러 형태들의 만남으로 서로 정보도 교환합니다.
그 많은 정보들 중에는 우리에게 참 유익한 것도 많지만 반면 참 쓸데없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도 많죠.....
누구는 영어를 잘하더라, 누구는 천자문을 뗐다더라, 누구는 무엇을 배우기 시작했다더라......
괜한 불안감을 낳게되는 이러한 불필요한 정보들로 누구나가 마음의 갈등을 겪어본
경험들이 있으리라 봅니다.
저역시 아이들이 어릴적 잠시 머물렀던 한국생활에서 이러한 불안감으로
아이들을 꽤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이란 것이 이러한 만남들을 통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듣게 되는 잘못된 정보(?)들로 마치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생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쩜 잘된 일이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미국에 들어와
내가 생활하게 되는 주변 여건들은 한국에서와의 그랬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었습니다.
남편의 직업 특정상 저희가 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한인 이민자들보다는
미국인들이 주로였기에 다시 만들어진 만남의 형태는 굉장히 '독립적(?)'이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배운다더라' 라는 남의 얘기보다는 주로 자기 위주의 소박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관이 아주 뚜렷한 그들의 배우고 싶은 교육관을 이해해 가다가도
간간이 만나게 되는 같은 한인 부모들의 부지런한 정보(?)를 듣게 되면 전 또
불안함에 빠지곤 했었죠.
이제 생각해 보니 불안정했던 저의 태도는 그 만큼 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만남들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만남들은 너무 많아도, 적어도 탈이기에 전 늘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다 저 나름대로의 타협점이라 할 수 있는 균형잡힌 만남들을 위해 저만의
적당한 '고독'을 선택하게 되었죠.
그렇게 내게는 벅찬 정보들로 버거워하면서 그 불안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더라구요.....
돌이켜 보니 '고독'은 넘쳐나는 많은 만남들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묘한 것을 줍디다....
'고독'이 자칫 잘못 전해주는 '혼자'라는 외로운 의미가 아니라 '혼자'이기에 겪게되는
모든 시행착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고 소신과 끈기로
키우게 되는 독립심과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 이런 '고독'의 좋은점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사실 타국살이는 '고독'을 즐기기엔 최상의 조건인 반면,
우리네들은 '그리움'이 크기에 끼리끼리 어울리길 갈망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그리곤,
가끔 상처도 주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다시 '만남'을 그리워 합니다.....
폭넓지 않은 이런 타국살이의 수많은 만남들은 물론, 아이를 양육하는 우리들
모두가 적당한 '고독'을 즐길줄 알아야 합니다.
'고독'이 두려워 자꾸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다 보면 '나'를 잃어버리게 되죠.
가끔은,
부담없이 마음 가는대로 해 보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어도 보고...
가끔은,
자연속에서 여유도 느껴보고...
가끔은,
맘속으로 울어도, 웃어도 보고...
가끔은,
내 몸에 좀더 신경도 써보고....
가끔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보고...
가끔은,
시계를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내도 보고...
......
이런 '고독'은 보람있는 생활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좋은 성과나 결과를
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 자신과의 만남! 만으로 흔들리는 불안함을 쫓아버리는 것이죠.
이렇게,
자신과의 마주보기 위해 우리에겐 가끔 '고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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