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용씨와의 오래된 추억
선인장 마을 이야기 2004/09/30 03:20   http://blog.azoomma.com/nayamina/161273

'지구는 하나’

새삼 이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외국에 사는 교포들도 이젠 위성이란걸 통해 24시간 고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는 사실 아시죠.

 

저도 이 문명의 발달로 85년부터 시작한 타국살이(더구나 이 사막살이?)가 덜 외로운 요즘입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이 되고 있는 '아침마당'을 즐겨보고 인생살이 누구 말대로 '301호나 302호나 다 똑같다'라는 명언을 위안삼다 보니 어쩌다 한판붙는 남편과의 전쟁은 하루를 못넘기곤 히히덕거리고, 낄낄거리게 됩디다...

 

어젠,  남편이 즐겨보는 프로 가운데 주로 3040을 위한 가요 프로그램이였나봐요....

 

내 대학시절 엄청나게 인기있던 가수 이용씨가 나왔더라구요. 

세월이 그리도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헤어스타일이 여전하였기에 거의 18년이 흘러버렸다는 느낌이 전혀 없더라구요.

 

아마 87년쯤이였나봐요.....

 

저희 가족이 미동부에 있는 볼티모어란 도시에 잠깐 살 때였습니다.

그분도 고국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다가 불미스러운 개인적 스캔들로 도미를 한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지금의 위성 TV 대신 교포사회 자체내에서 만들어낸 라디오 방송이 한국 드라마를 녹화한 비디오 다음으로 교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보도 교환하는 참으로 따뜻한 고향같은 곳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이용과 함께!'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타국에서 연예인을, 그것도 인기있던 가수가 이민자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인기가 있었죠. 

그 프로그램 도중 전화로 교포들이 직접 참여하는 퀴즈가 있었는데 주로 용감한 아줌마들의 독무대였음을 고백합니다..... 

 

그 때 저도 새내기 아줌마로서 용기내 우연찮게 참가하여 상품(아직도 갖고 있는 알람시계)까지 받게 되었죠.

 

해프닝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방송이 끝난뒤 상품을 보내줄테니 이름과 주소를 알려달라며 이용씨가, 제가 남겨놓은 저희집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했더라구요. 

솔직히 연예인과 직접 통화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가슴 떨리는 일인줄 미쳐 몰랐었습니다.

 

"이민생활 힘드시죠?"

를 시작으로 어쩌구, 저쩌구... 적어도 난 정신없이 대화를 시작했고, 짧지않은 그와의 통화로 같은 이민자로서의 공통된 입장이 되었고, 우린 참 친근하게 대화를 하곤 그가 그러더군요.... 

 

"퀴즈 맞추신거 축하하고요.,  선물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죠" 

 

"네에~~  *&*^#$%@^%@$* 입니다."

 

"그리고, 성함은요?"

 

"first name은 M,I,N,A  last name은 H,E,R,M,A,N이요."

 

"Mina Herman씨! 넷 알겠습니다.  상품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럼 용기 잃지 마시고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딸깍~~~

 

'용기를 잃지 말라고????  내가 왜 용기를 잃어?? ?!?!'

첨엔 이해를 못하고 의아해 하다가 나중에야 대충 알 수 있었죠.

그 '용기 잃지 말라' 는 말은 그분이 저의 'Herman'이라는 last name만 듣고 제가 외국사람과 결혼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나봐요.

 

아마도 외국사람과의 결혼생활은 문화 차이나 언어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을거란 그분의 선입견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그런 '위로의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그곳은 외국 군인과 결혼해 미국에 들어와 사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물론 이름만으론 제 남편이 당연히 독일계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제 남편은 어릴적 입양된 순토종(?)입니다.... 

그것도 적어도 두끼는 꼭 한식을 해야하는....

 

미국생활 초년병때 이 사건(?)을 시작으로 아직도 저와 아이들에겐 'Herman'

이라는 last name으로 생기는 해프닝이 여전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하튼, 오랜만에 TV에서 이용씨를 보니깐 엊그제 같던 그 추억이 새삼 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네요....

 

"이봐요!  이용씨!  저희 남편 한국사람이고요, 덕분에 저 용기 잃기 않고 자아알~  먹고, 자아알~  살면서 씩씩한 아들내미 둘하고 이곳 선인장 마을에서 용감한 대한의 아줌마로 국위선양하고 있다고요!!!!  "

 

이렇게 웃으며 끄집어 낼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건, 우리가 충분히 행복해야 할 이유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추억과 참 잘 어울리는 사막의 맑은 하늘이 오늘은 더 이뻐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