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나면 해치워 버릴, 그저 피곤한 일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는 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
끼니는 바쁜 세상 적당히 사먹거나 다 만들어진 것으로,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저절로
클 것이고....
내적인 충만보다는 형식적인 외적인 면만 급급해
하면서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것만 아쉽지 않게
채워지면 나머지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을거라 생각하면서
세상에 보여질 내 모습과 평가 되어질
가족 구성원의 위치와 자질만 신경 쓰며 살아왔다.
오늘 아이 방을 치우다 읽어본 몇줄의 문장은 내가 해야하는
가정에서의 나의 일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오늘도 엄마가 날 데리러 오지 못했다. 엄마가 바쁘기
때문에 할머니가 오셨다.
오늘도 엄마가 해준 스파게피를 저녁으로
먹지 못 할 것 같다.
두 세 달만 참으면 한가해 진다고 하지만
엄마가 나보다 늦게 집에 오는 것이 그냥 싫다.
엄마가 없으면 왠지 불안하다."
사랑이 숨쉬는 가정을 만든다는 것에는 물론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희생 뒤에 오는 보람이나 기쁨이 희생한 사람의
몫이 아닐지라도 그 희생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충분히 희생한 만큼의 아담한
만족도 있으리라.....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해도 엄마로서 만으로도
난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란 것은
어떤 명예나 얼마큼의 금전적 값어치를 뒤로하고
헤아릴 수 없는 기쁨임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가정 안에서 아이들 낳고 키우는 일,
그 아이에게 따뜻함과 사랑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아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엄마의 길이란 젊었던 날 꿈꾸었던
내 잃어버린 인생의 일부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귀한 나의 사명임을 깨닫는다.
내가 있고 가족이 있는 한
시간은 무심히 흐르는 것만은 아니리라.
잃어버린 내 꿈의 일부를 아쉬워하지 말자.
꿈이란 꿈꾸고 있을 때 더 애달픈 것이겠지.....
내 책임과 희생을 베개 삼아 잠자고 있는 천진한 아이들의
뒤척여진 이불을 덮어 주며
오늘도 하루를 마감하는 불을 끈다.
몇일전 신문 한귀퉁이에 실린 이 글을 남편이 오려내곤, 두 아들녀석을 위해 한장의 카피와 함께 녀석들 책상위에 놓아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 신문에 실린 이글이 비록 우리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십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했지만 너희들이 짧은 이글을 읽고 엄마의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하길 바란다...
든든한 아빠로 부터......"
라는 쪽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