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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됐다 지난 15일 석방된 일본인 3명이 18일 두바이의 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귀국길에 올랐다. [로이터특약] | |
이라크에서 인질이 됐던 일본인 5명이 풀려나 귀국한지 며칠이 됐습니다. 아직도 일본 사회는 그들에 대해 ‘자기책임론’의 잣대로 뭇매를 가하고 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다 생환한 이들을 왜 일본 사회는 이렇게 파렴치범 대하듯 할까요.
▽뉴욕타임즈 보도
그동안 이라크에서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무장집단에 납치되었다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범죄인처럼 대접한 나라는 일본 밖에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이 기묘한 현상에 대해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엊그제 비판적으로 보도하자 일본 언론매체도 비로소 ‘자기책임론’을 검증하는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인질이 됐다 귀국한 일본인들, 그들을 애타게 기다렸던 부모형제가 한 줄로 늘어서 죄인처럼 고개를 90도로 꺾어 절하는 사진을 곁들여 보도했더군요.
일본에서 이런 장면은 어느 때 등장하냐면요, 선생이 제자를 성추행했다거나, 경찰관이 술에 취해 총기로 민간인을 다치게 했을 때 교장선생이나 경찰서장이 사죄의 기자회견을 할 때 볼 수 있답니다.
18일 밤 이라크에서 무장집단에 납치됐던 일본인 3명이 귀국할 때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갑만 채워지지 않았을 뿐 영락없이 해외에서 압송되는 범죄자였으니깐요.
살해 위협까지 받았기에 생환의 기쁨이 클 터이나 미소조차 없었고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옷가지를 덮어쓰고 재빨리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영웅처럼 떠받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지요. 이처럼 싸늘하게 대접할 까닭이 있냐 이 말입니다.
▽자기책임론
인질들에게 여론의 뭇매가 가해진 것은 우선 그들이 정부의 위험지역에 대한 여행 자제 권고를 무시하고 이라크에 들어가려다 인질이 된 경위 때문입니다.
결국 저희들이 좋아서 들어가다 당했으니 자업자득이요, 그것은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인데 정부 관계자 수십명이 요르단에 파견 가고 며칠간 대책실에서 철야하고 전세기가 뜨고 난리법석이 났으니 들어간 막대한 세금이며 죄다 너희들 책임이라는 비난이었지요.
인질들이 귀국한 뒤 정부, 여당이 재발방지를 위해 ‘위험지역 여행금지법’을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도 인질들한테 적어도 항공료는 받아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였지요. 현대 민주국가에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왜 이들의 안전귀국을 위해 정부가 나서고 나서야 하는지 알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인질들은 이후 TV에 등장해 개인적으로 입도 뻥긋 못하는 실정입니다. 무장집단에서 해방됐으되 이제는 일본에서 ‘사회적 인질’이 되어 방 안에 유폐된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이같은 집단적인 압력에는 다른 배경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모두 이라크 전쟁과 자위대 파견에 줄곧 비판적이었기에 정부 여당이나 파견 찬성론자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납치사건 직후 정관계와 언론계에 이들이 자위대 철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조차 나돌았겠습니까.
이들은 또 석방 후 평소 소신대로 “이라크에 남아 일을 계속하고 싶다” “힘든 일을 당했으나 이라크 인을 미워할 수 없다”는 등 ‘친 이라크’ 발언을 해 더욱 미움을 샀지요.
▽심리적 배경
필자가 인질을 죄인시하는 일본 사회를 비판한 글을 한국의 매체에 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며칠 전 일본인 인질 가족 되는 분이 저희 사무실에 전화를 해왔더군요. 그 글을 구하고 싶다고요.
그 일본인들이 오죽이나 속이 터졌으면 저 같은 한국인에게까지 전화했겠나 싶어 안쓰럽더군요.

지난 11일 일본총리 관저 부근의 ‘자위대 철수’ 시위현장을 찾아 감사표시를 하고 있는 피랍 일본인 3명의 가족들.그들을 범죄자처럼 고개를 숙이고 입국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명분 없는 이라크 개전에 반대했고, 현재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글과 사진으로 고발하려 했고, 버려진 전쟁 고아를 돌보려 했으며, 미군이 사용했던 열화우라늄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려는 신념을 갖고 이라크행을 선택했던 그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일본 사회의 특수한 분위기가 그들의 고개를 꺾어놓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국가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둔 집단주의의 영향이 아직 일본사회에 너무도 뿌리깊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좋습니다, 자기 책임이란 말.
그러나 진정한 자기 책임은 무엇인가요. 인간의 보편적 가치 즉 민주와 자유와 정의에 입각한 인류애, 그같은 가치관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설령 그같은 행동을 하다 목숨을 잃더라도 그것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단지 ‘국익’이란 이름의 반인류적 명령 아래에서 행동하다 죽는다면 이는 영웅훈장을 몇 개 받아도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책임있는 죽음은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상 늘 지배계급과 국가권력은 그런 자기책임을 다한 애국자가 많기를 바라지만요.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던 일본 전범들은 애국자가 될 수 없지요. 그런데도 일본 사회가 국수주의화하면서 그들을 애국자로 떠받들어가는 모습이나 이번 인질에 대한 ‘자기책임론’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 대부분이 히틀러나 뭇솔리니를 애국자로 본다면 인접 국가는 얼마나 기가 차겠습니까.
개인의 신념이나 정의, 자유라는 가치관은 말살되고 독재정권의 이익이 국책으로 탈바꿈해 오로지 이에 반하느냐 아니냐만 놓고 멋대로 인권을 유린하고 목숨을 빼앗던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때가 떠오릅니다.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얼빠진 한국인들 생각해도 기가 차지만요.
이라크 인질에 대한 ‘자기책임론’ 소동이 일본인들에게 제발 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개인적 차원의 자기책임론, 좁은 시야의 국익만을 기준으로 거론해온 자기책임론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했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부디 역사적 관점에서, 인류애적 관점에서 ‘자기책임’을 거론하는 일본 사회의 성숙을 기대해봅니다.
일본 도쿄=도깨비뉴스 리포터 지안
jian@dk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