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뒤안
영주는 파란 하늘을 우러러보기를 좋아합니다.
끝이 없이 넓은 하늘. 끝이 없이 높기만 한 하늘.
언제나 봐도 파랗기만 한 하늘.
하늘의 식구들은 또 얼마나 신기한 이들인지요?
해님도, 달님도, 별님들도, 흰구름도 있고 무지개도 있고,
때로 비구름이 몰래 드는 날은 천둥 번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들은 이내 물러나니까 크게 걱정할 일이 못되지요.
오히려 그 심술 사나운 번개가 찢으려 들고, 천둥이 깨뜨리려 해도
날이 개고 나면 손톱 상채기 같은 빗금 하나도 없어
영주를 놀라게 하는 하늘입니다.
영주는 언젠가 우연히 두 다리 사이로
하늘을 보고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다리 사이로 본 하늘은 엉덩이 아래로 내려와 있는 듯하여
영주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아서 손을 내밀었다가 고꾸라지고 말았지만.
그 무렵 영주의 소원은 하늘에 벌렁 누워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영주의 머리 위에서 발밑으로 좀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영주는 하늘한테 불평하였습니다.
"너는 어쩌면 그러니? 내가 이렇게 간절히 소원하는데
한번쯤 내려와 보면 어디가 덧나?"
"흙 묻힐까 봐 못내려 오는 거니? 에고 불쌍해라.
훌훌 털면 되는 거야, 바보야. 그런데 빨래는 안되겠다.
너 그 넓고 한정 없이 깊은 자락을 어디다 넣고 빨아야 하니?"
"너 그러면 내가 안 볼거야.
안 봐도 좋아? 좋아. 너도 내가 안 보면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그때 가서 영주야, 한 번만 봐줘, 그런 부탁하기만 해봐라."
그러나 하늘은 마냥 푸르기만 하였습니다.
이래도 파랗고, 저래도 파랗고, 그런 하늘을 미워할 수 없어서
영주도 끝내는 풀썩 웃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런 하늘이 좋아서 두 팔을 벌리고
내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영주의 소원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저 하늘의 뒤안을 한번 보고 싶은 것입니다.
낮이면 엄마의 파아란 치마 같은 휘장을 두르고 있고,
밤이면 아빠의 까만 양복 같은 천을 두르고 있는 하늘,
아니, 때로는 고모의 블라우스 같기도 합니다.
영주는 그 하늘 겉옷을 살며시 들춰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엄마처럼 하늘의 젖가슴이 살짝 보일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아빠처럼 하늘의 겨드랑이털이 슬쩍 비칠지도 모르고요.
영주는 물었습니다.
"엄마, 하늘의 젖가슴도 엄마처럼 하얘요?"
"아빠, 하늘의 겨드랑이털도 아빠 것처럼 까매요?"
엄마 아빠는 쿡쿡쿡 쿠욱 쿡 웃었습니다.
그러다 입을 꾹 다물고서 한참 있다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하늘에 대고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말 하는 거 아니다."
"넌 왜 그런 엉뚱한 말만 하니?"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영주가 아니지요.
"하늘 뒤안을 보고 싶다니까요, 아빠."
"하늘 뒤안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줘요, 엄마."
엄마 아빠는 한숨을 포옥 땅이 꺼지게 쉽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영주야, 그런 건 묻지 말고 1,2,3,4나 부지런히 써보아라."
"나중에 학교에 가서 과학을 배우면 알게 된다."
오늘, 영주네 집이 있는 골목에
목마를 태워 주시는 할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자, 목마를 타고 싶은 어린이는 오세요. 거저 태워 드립니다.
소원이 있는 어린이도 오세요. 소원도 들어 드립니다."
영주와 함께 놀던 박하가 먼저 달려 나갔습니다.
민이도 따랐습니다. 영주도 뒤쫓아 갔습니다.
목마를 끄는 할아버지는 둥둥 북을 울리며 아이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번쩍번쩍 들어서 목마를 태워 주었습니다.
영주는 돌담 밑에서 아이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렸지요.
마침내 하늘에 노을이 스러지자 늦게까지 남은 박하도 민이도
엄마한테 손목이 잡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영주는 그제야 목마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데 목마라도 들을까 봐
살며시 할아버지의 귀에 입을 대고 말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제 소원이 하나 있어요.
들어주세요.
그것은요, 하늘 뒤안을 가보고 싶은 것이에요."
목마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늘에 별이 반짝 눈을 뜨자 할아버지도 반짝 눈을 떴습니다.
"자, 이렇게 해보아라."
"어떻게요, 할아버지?"
"하늘에서 땅으로 다리가 놓일 때가 있거든."
"아, 무지개 말이군요.
그런데 할아버지, 무지개는 금방 금방 사라지는걸요."
목마 할아버지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띠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무지개 말고 네 무지개를 놓아야지.
하늘에는 네 무지개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거란다."
"그럼 할아버지, 어떻게 내 무지개를 가질 수 있지요?"
목마 할아버지는 호주머니 속을 뒤졌습니다.
이내 할아버지는 호주머니 속에서 일곱 가지 색깔의 크레용을 꺼내
영주한테 주었습니다.
그날 밤 영주는 목마 할아버지가 주신 크레용으로 영주네 뒷동산에서
파란 하늘까지 무지개 다리를 놓았습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
그리고 보라가 사이 좋게 엎드린 다리였습니다.
영주는 무지개 다리를 달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듯 온몸이 가볍고 발 밑에 날틀이 달린 듯
둥둥 떠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침내 영주는 파아란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늘 뒤안을 들쳐 보려는 영주의 가슴은
그렇게 쿵쿵 뛸 수가 없었습니다.
손도 부들부들 마구 떨렸습니다.
눈을 꼭 감고 얼른 하늘자락을 들쳤습니다.
눈을 뜬 영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영주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하늘 뒤안 풍경,
그것은 다름 아닌 영주가 어질러 놓은
영주네 마루 정경 그대로였으니까요.
영주가 보다가 펼쳐 놓은 그림책이 저만큼에 있고,
크레용이 흩어진 채로 있고, 과자 빈 봉지와 휴지가 구르고 있고,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영주의 양말이 있고……．
목마 할아버지가 곁에서 말하였습니다.
"하늘 뒤안은 다른 데가 아니란다. 영주의 마음 뜰이지.
영주가 마음 뜰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깨끗할 수도 있고 지저분할 수도 있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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