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 주사를 맞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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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라고 해야 하나? 매일 05시50분이면 텔레비전이 저절로 켜지고, 신랑과 나의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부스스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신랑은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기에 항상 이 시간이면 현장으로 출근을 하고 아침밥도 그곳에서 해결한다. 하지만 신랑은 출근 전에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어서 신랑의 아침은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빨리 시작된다. 신랑이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에 바쁜 시간, 나는 아직도 곤하게 자고 있는 딸아이를 조심조심 살핀다. 겨울에는 두꺼운 담요에 싸거나, 외투를 입히고 요즘 같은 환절기 때에는 카디건이나, 얇은 잠바를 입힌다. 양말을 신기고 작은 가방에 현경이의 하루 간식과 팬티와 실내복을 한 벌 넣는다. 그리고 현경이가 오늘 해야 할일이 적힌 메모장도 넣는다. 이런 준비가 끝나면 신랑이 차의 시동을 걸어 놓고 오고 나는 현경이를 남편에게 안아 넘긴다. 잠결에도 아는 것일까? 현경이는 아빠 품으로 옮겨질 때면 으레 눈을 슬며시 뜬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말한다. “엄마 주사 맞고 온나.” 아이답지 않은 쉰 목소리다. 잠에서 헤어나질 못한 그 목소리가 하루 종일 가슴에 남는다. 나는 대답 대신에 딸아이에게 입을 맞춘다. 현경이는 오늘도 이모 집으로 나보다 먼저 출근했다. 남편과 딸아이의 출근 준비는 10분이면 족하다. 27개월이 된 현경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사자와 주사다. 사자 소리 흉내만 내어도 얼굴은 무서움으로 가득 차서 울음보를 터뜨리기 일쑤다. 그리고 혼내줄 때는 주사 맞으러 가야겠다고만 하면 말을 잘 듣는다. 현경이가 엄마를 알고 나와 떨어지기를 싫어할 때부터 “엄마는 주사 맞으러 갈 건데, 현경이도 같이 맞을래?” 하면 싫다고 고개를 흔들곤 했다. 현경이에게 주사는 곶감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쉽게 아이를 보내고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출근은 주사를 맞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점심시간에 현경이에게 전화를 한다. 항상 12시 30분경이면 전화가 울리면 당연히 내 전화라고 생각하고 뛰어가서 전화를 받는단다. 이모가 전화를 받을라 치면 “현경이꺼다, 엄마다”라고 외치며 달려온단다. “엄마, 주사 맞았나?” 현경이가 묻는다. “응, 현경이 밥빠 먹었어?” “아니, 안 먹었다.” 항상 안 먹었다지.... “엄마, 주사 다 맞았나?” 현경이가 다시 묻는다. “아니, 나중에 다 맞고 갈게.” “응, 주사 다 맞아~, 주사 다 맞고 온나.” 현경이와 전화통화를 하면 항상 나에게 주사 다 맞았냐고 묻는다. 이모에게 “엄마 주사 다 맞고 온다.”를 하루에 열 번은 족히 말한다고 한다. 책을 보다가도, 비디오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엄마 주사 맞으러 갔다” 낮잠이 올라 싶으면 어김없이 “엄마 주사 맞고 온다.”는 말을 한다는데, 그 말을 들으면 내 심장이 아주 뜨거워진다. 난 퇴근을 하면 과외라는 주사를 또 맞는다. 맞벌이를 해도 양가 부모님, 아이를 위하다 보면 항상 한 달이 빠듯하다. 이제 현경이가 자라면 돈도 많이 들것 같아서 지난해부터는 투잡으로 밤마다 과외도 두 타임을 하고 있다. 현경이는 저녁밥을 이모랑 같이 먹고, 8시 경이면 신랑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공부방을 훔쳐보며 아빠에게 책을 읽어 달라 졸라대곤 한다. 엄마가 언니들과 책을 함께 보고 있으니 저도 똑같이 하고 싶은가 보다. 아빠와 나란히 소파에 기대어 책을 본다. 아빠가 읽으면 따라서 소리 흉내만 내지만 그렇게 똑 부러져 보일수가 없다. 나도 팔불출인가 보다. 그런 풍경을 만든 채 내가 방에서 나올 때 까지 기다린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내가 다시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현경이가 달려와서 내 허리춤에 안기고 얼굴을 묻으며 물어 온다. “엄마 주사 다 맞았나?” 그때야 나는 말한다. “응, 다 맞았어, 이제 현경이랑 놀까?” “네!~” 현경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가 놀아준다는 말에 신이 나서 펄쩍인다. 시계의 바늘은 11시를 넘어섰다. 현경이는 하루 종일 엄마가 주사 다 맞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쯤이면 내 주사가 다 될까? 이제 현경이를 위해 주사도 그만 맞아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매일매일 되풀이 한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주사를 맞고 있다. 주사 바늘을 뽑을 용기가 아직 없다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