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에 영어·중국어가 자유자재… ‘언어 신동’ 이채연양
열두 살 이채연(李彩연) 양은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원어민과 회화가 가능한 정도가 아니다. 문학적 느낌을 살려 영시(英詩)를 짓고 동화를 중국어로 번역해 발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 얼마 전부턴 프랑스어 공부에도 조금씩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해외여행조차 가본 일이 없는 평범한 어린이가 ‘외국어 신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채연이가 처음 외국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는 ‘영어 비디오 테이프’였다. 채연이의 부모님은 채연이가 두 살 되던 해부터 쉽고 재미있다는 어학용 비디오 테이프를 부지런히 구해 틀어주었고, 채연이는 이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TV 앞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몇 년 후엔 혼자서 VCR 조작법을 익혀 좋아하는 테이프를 반복 시청하며 그 내용을 통째로 외워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금도 채연이네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거실 TV 옆에 쌓여 있는 300여개의 비디오 테이프들. 학습용 교재에서부터 ‘알라딘’ ‘포카혼타스’ 등 애니메이션, 어린이용 영화,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을 녹화한 공테이프까지 종류도 방대하다.
중국어와의 만남은 채연이가 여섯 살 때 이뤄졌다. 갑작스런 맹장 이상으로 입원하게 된 채연이가 병상에서도 영어 스토리북과 카세트 테이프를 놓지 않자, 옆 병상의 손님이 이를 눈여겨본 것. 채연이는 그 사람의 권유로 중국 학교 유치부를 소개받아 퇴원 후 바로 중국 학교에 입학했다. 중국어 체계가 한동안 낯설긴 했지만 6개월여 만에 선생님 말씀을 거의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학교에서 배운 걸 우리말로, 다시 중국어로 고치는 연습을 하며 복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1년여, 1학년에 진학한 채연이의 입에선 생각지도 않게 중국어가 튀어나왔다. 소질도 있었지만, 그 절반 이상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채연이의 노트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영시, 중국어 시(詩)들이 빼곡하다. “내 감정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표현하는 게 억울해서” 몇 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것들이다. “A good man died/ and even sky is crying/ We all cried/ for the man who died”(훌륭한 사람의 죽음에/ 하늘마저 운다네/ 우리도 망자를 위해 울었네, 영시 ‘After good man died(훌륭한 사람이 죽은 후)’ 중) “黑黑晩上月光照/黑黑天裡明光照”(어두운 밤에/ 달빛이 비춥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밝은 빛이 비춥니다, 중시 ‘月(달)’ 중) 등 채연이의 시는 원문도 손색이 없지만 우리말 해석이 더 빼어나다.
외국어 공부 틈틈이 우리말 표현을 익히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학적 소질을 살려 작년 8월엔 만화 ‘가시고기’(전3권)의 번역에도 손을 댔다. 2개월 만에 번역을 끝낸 채연이의 ‘영문 가시고기’는 얼마 전 1권이 먼저 출간됐다.
채연이는 지난 4월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최정화 교수와 함께 ‘외국어, 내 아이도 잘할 수 있다’란 책을 펴냈다. 그동안 익힌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어 엄마(유영옥씨)와 함께 무작정 최 교수를 찾아갔던 작년 가을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의 일이었다. 최 교수는 ‘상당한 수준의 외국어 실력에 논리적이고 정확한 표현력까지 갖춘 놀라운 어린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7월에는 주한 중국대사관이 주최하는 ‘전국 중국어회화 경시대회’서 일반 부문까지 통틀어 1명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또래들에 비해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시력도 급격하게 나빠졌다.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강남에서 강북으로 학교도 수없이 옮겨 다녔던 채연이는 결국 올해 초 다니던 학교(경기 의정부서초등 5년)를 휴학했다. 올해 안에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열두 살짜리 소녀의 꿈은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유능한 동시통역가가 되는 것이다.
최혜원 소년조선일보 기자(happyend@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