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파문이 준 교훈
기본 주제방 2004/08/07 13:24   http://blog.azoomma.com/lym2099/148887

[중앙일보 김상건] 지난 며칠 동안 PPA 성분을 함유한 감기약 판매 금지와 관련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조치에 대해 여론의 비상한 관심과 비판이 있었다. 식의약청은 의약품.식품과 관련된 자료 해석, 행정 조치,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이다. 최근 우리 국민은 생활 및 소득 향상과 더불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져 보건당국에 대해 거는 기대치도 높아진 것 같다.

 

최근 관심이 집중된 PPA 약물은 교감신경 흥분성 유사아민계 약물이다. 이 약물은 콧물 등 감기의 증상 완화 목적으로 사용되며, 중추 흥분작용을 하므로 식욕억제 효과를 내는 다이어트제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PPA가 출혈성 뇌졸중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발표됐고,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2000년 11월 이후 단계적으로 일반약과 처방약에서 이 약 성분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미국의 제약사들은 감기약에서 이 성분을 없애거나 다른 성분으로 대체했다. 일본은 지난 2월 감기약 중 PPA를 다른 성분으로 대체했다.

 

우리나라는 7월 31일 국내 75개 업체의 PPA를 함유한 감기약 167개의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외국에 비해 우리 당국의 조치가 지연된 것에 대해, 업자들의 이익에 매달린 보건행정이라고 비난한다.

 

보건행정 조치는 과학적 연구 결과의 해석에 근거한다. 미국에서 일찍이 약물 금지의 행정조치를 주도한 것은 PPA를 식욕억제제로 사용할 때 출혈성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는 2000년 5월 예일대의 연구보고서로 시작됐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 식품의약국은 예일대의 보고를 신속히 정책 결정에 활용했을 뿐이다.

 

우리 국민 중 일부는 "위험하다는데 왜 판매 중지부터 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을 정부 당국에 제기하는데 이는 약물 사용이 약물 혜택과 부작용 간의 선택이라는 원리를 간과한 것이다. 부작용이 보고될 때마다 정부가 검토 없이 서둘러 약물 사용을 중지시킨다면 좋은 약물이 없어 국민이 갖는 건강상 손실은 누가 감당하겠는가?

 

 이 사안에 대해 정부의 의사결정 책임자는 약물의 혜택과 부작용 간의 적절한 선택을 위해 고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식의약청 관계자는 "국내 유통 감기약의 PPA 함유량은 적었기 때문에 전면 금지가 어려웠다" "국내 역학조사 연구를 통해 소량의 PPA와 뇌졸중의 관계 입증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약물 1정 중 함유량과 복용횟수를 감안한 실제 1일 약물 용량의 개념을 통합해 미국의 자료와 비교했더라면 더 빠른 조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문제점은 행정 당국자들의 전문성 심화 및 능동적 행정으로 극복돼야 할 것이다.

 

실제로 PPA를 함유한 감기약 등 대다수 약물은 복용을 중지할 경우 곧 체외로 배설되고 이 약물을 복용한 사람들이 심혈관 이상을 동반하지 않는 한 약물 부작용은 거의 없다. 따라서 감기약 복용 당시 문제점이 없었다면 PPA로 인한 걱정은 크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복용했을지도 모를 이 약물에 대한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뇌졸중 예방을 위해 운동, 금연, 칼로리 섭취 제한 등 바른 식생활을 하는 게 백배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이번 PPA 파동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미국만큼 빨리 이 약물 판매 금지조치를 내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생각해 본다. 국내에서 예일대의 연구보고서에 해당하는 신뢰도 높은 과학 자료 도출이 필요하고, 이와 함께 전문성 있는 우수한 행정관료 양성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일부 국민이 비난하는 이번 파동과 관계된 '뒷북 보건행정'의 탈피는 이에 걸맞은 한국 과학 발전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국민은 보건행정 당국에 대한 일방적인 질책보다는 의료 사안의 결정에 있어 선도적 과학 발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촉구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상건 서울대 교수.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