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히 따져봅시다! 대형 할인점, 싸긴 싼가?
사람들은 대개 할인점을 싸고 편리한 쇼핑의 전당으로 여긴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할인점이라고 모두 싼 것은 아니다. 값을 비교한 결과 일부 품목은 재래시장보다 훨씬 비쌌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이니 당연히 쌀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선호하고 있는 셈이다.
품목별로 자세히 따져볼수록 가격 차 드러나
할인점 이용 전보다 한 달 부식값 20만원 상승
대형 할인점이 가까이 있으면 집값이 올라가고, 아파트 분양광고에서도 인근의 할인점은 반드시 내세우는 장점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할인점의 모든 물건 값이 정말 쌀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시장조사에 나섰다. 가정주부와 함께 늘 식탁에 오르는 신선식품의 값을 비교하기 위해 서울의 재래시장과 대형 할인점을 동시에 찾은 것. 동행한 박순자씨(57)는 열일곱 살부터 가계부를 쓴 34년 차 알뜰 주부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소비자물가 모니터링 요원으로 26년째 활동중이며, 서울시 식품감시요원을 13년간 지냈다.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중랑구의 태릉시장. 그녀는 단골인 길가의 청과물상에서 열무와 아욱을 골랐다. 열무와 아욱 한 단에 각각 2천5백원과 1천원을 냈다. 그녀가 쪽파를 조금만 달라고 하자 가게 주인은 “5백원어치는 팔지 않지만 단골이니까…”라며 한 움큼 집어 건네줬다.
그녀는 이 시장에서 구이용 고등어 한 손을 3천원에 샀다. 태릉시장에서 지출한 돈은 모두 7천원. 식구가 부부 둘뿐이어서 이 정도면 이틀은 충분하다고 했다.
박순자씨는 이어 중랑구 상봉동의 이마트로 갔다. 농산물 매장을 먼저 찾은 그녀는 야채와 가격표를 번갈아 쳐다본 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숫자”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재래시장에서 1천원에 구매한 아욱은 한 묶음이 1천9백80원으로 2배 가까이 비쌌다. 2천5백원에 산 열무도 값이 3천2백50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녀는 “값도 비싸지만 양도 적어요. 시장에서 산 아욱이면 이틀은 먹을 수 있는데 여기 것은 하루 분밖에 안 돼요. 열무단도 시장 것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구요”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농산물 매장을 더 둘러보면서 재래시장에서 메모한 값과 일일이 비교했다. 시장에서 1천3백원이면 살 수 있는 배추가 할인점에서는 2천4백80원으로 크기도 작았다. 대파(시장 1천2백원)는 1천7백80원, 적상추(시장 1천5백원)는 3천7백80원이었다. 시장에서 5백원어치에 해당하는 부추는 3배가 넘는 1천6백50원이나 한다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무는 1천8백80원으로 시장(2천원)보다 쌌다.
생선 매장도 마차가지였다. 시장에서 3천원에 구입한 고등어가 마트에서는 5천8백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가 시장보다 너무 비싸다고 푸념하자 점원은 “들어오는 가격이 매일 다른데 요즘은 좀 비싸요. 쌀 때는 4천8백원에 팔기도 해요”라고 했다.
장보기를 마친 그녀는 “품목별로 상세히 비교해볼수록 가격 차가 드러나요. 할인점이 시원하고 깨끗해 상품이 신선해 보이지만 어차피 집에서 씻으면 재래시장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값은 너무 차이가 나요”라고 말했다. 또 그녀는 “할인점의 최저가 광고는 할인점끼리나 하는 말이지, 결국 소비자에게는 빈말”이라고 지적했다. 신선식품에 관한 한 할인점이 포장과 위생, 편리함에서 우세하지만 할인점이 앞세우는 가격 경쟁력은 재래시장에 비하면 턱없이 바싸다는 게 그녀의 총평이었다.
이에 대해 (주)신세계 홍보실 김자영 대리는 “이마트는 가격보다는 품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재래시장 상품과 질적으로 다르다. 신선한 농·수산품을 직매입한 뒤 즉시 판매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재래시장 가격과 단순히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순자씨는 할인점에서는 충동구매에 따른 지출이 생각보다 많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남편과 20인치 TV를 구입했다. 전자제품 매장에 `‘할인 판매’ 표지가 붙어 있어 물어보니 22만원짜리를 15만원에 판다고 해서 ‘싸니까 일단 사고 보자’는 생각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식구가 2명인데다 이미 2대가 있어 채널 싸움할 일도 없는데 덜컥 사고 보니 지금은 집에 사람보다 TV가 많아요. 평소엔 공간만 차지하다가 어쩌다 손님이 왔을 때나 사용하죠.”
 또 할인점에서 시행하는 반짝 세일의 유혹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갑자기 1천원짜리 플라스틱 물통을 9백원에 판매하기에 한 개 구입했다. 집에 물통이 여러 개 있지만 1백원 싸다는 말에 `‘당장 불필요한 제품’을 선뜻 사게 되더라는 설명이다. 외국산이나 제철보다 일찍 나온 과일 역시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대표적인 품목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저도 ‘짠순이’라고 소문이 난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소비가 늘어나니 다른 분들이야 어떻겠어요. 꼭 사야 할 물건을 미리 메모한 뒤 할인점에 가지만 언제나 돈을 더 써요. 5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할인점에 가면 보통 7만~8만원은 쓰는 것 같아요.”
그는 할인점을 전혀 이용하지 않던 2002년에 부식비가 월 평균 50만원 정도 들었는데, 할인점을 이용하면서부터 부식비가 20만원 정도 늘었다는 것이다. “한 달에 서너 차례 할인점을 이용할 뿐인데 지출이 부쩍 늘었어요. 장보기가 편리해진 데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과해요.”
할인점용 제품 따로 만들어
‘초특가’ 아니라 ‘싸게’ 만든 제품
대형 할인점들이 내세우는 광고 문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초특가’ ‘최저 가격’ ‘가격 파괴’ ‘파격 할인’ 등이다. 대형 할인점이란 이름에도 ‘할인’이란 말이 들어가 있다.
소비자들은 광고와 ‘할인점’이란 이름 때문에 으레 저렴한 줄 알고 ‘대형 할인점’을 이용한다. 그런데 과연 ‘할인점’이 맞는 것인가?
그러나 취재 결과 대형 할인점에만 납품되는 상품이 따로 있으며, 종전 생필품도 규격과 용량을 달리해 ‘싸게’ 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것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형 할인점’이 아니라 ‘대형 유통점’이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대형 할인점에만 납품되는 상품들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할인점용이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표기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할인점용 제품
공산품 중에는 할인점용 제품들이 따로 있다. 정식 대리점에서는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할인점에서만 판매되는 것들이다. 이 제품들은 외관은 비슷하나 품질이 다르다. 이 제품들은 할인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싸게’ 만든 물건이지만 ‘초특가’ 등의 문구 아래 할인된 것인 양 팔리고 있다.
삼천리자전거는 할인점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 이마트, 까르푸 등에 납품하고 있다. 최근 대형 할인점에서 초특가로 제시된 레스포 알파인 DX26(16만5천원), 히트 24(15만5천원) 등이 할인점용이다. 삼천리자전거에 따르면 올해 1백60개 모델 중 대리점에만 납품하는 것은 1백개, 대리점과 할인점에 모두 납품하는 것은 30개, 할인점용 모델은 30개라고 한다.
삼천리자전거 홈페이지에서 이들 할인점용 30개 제품에 관한 정보는 검색되지 않는다. 취재팀이 이와 관련해 삼천리자전거 측에 문의했을 때 처음 전화를 받은 직원은 “(할인점용 자전거가) 정상 제품이 아니라 검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통화한 관계자는 “`‘정상 제품’이지만 시중 대리점에는 납품하지 않고 할인점용으로 따로 제작한 것으로 제품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비싼 재질을 쓰느냐 조금 싼 걸 쓰느냐가 다를 뿐”이라며 “대리점용으로 만드는 것들은 고급 재질을 쓰며 스틸 강도도 조금 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할인점 측에서 싼 제품을 요구하는데다 종전 대리점 쪽에서도 불만을 제기해 할인점용을 따로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제품도 마찬가지다. LG전자 홍보실 박세원 과장은 “할인점은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니까 가격대를 낮춰서 내놓을 수 있는 할인점용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대리점과 외관과 기능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나는 제품을 모델명을 달리해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탁기를 예로 들면 기능은 똑같지만 할인점용 세탁기의 경우 외관 재질과 도료가 정식 제품에 비해 싼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전자 채희국 대리도 “할인점 제품은 대리점 것과 기능상 큰 차이가 없으나 ‘조그마한 차이’가 있다”면서 “드럼세탁기는 도어의 재질, 냉장고는 냉장고와 냉동고 서랍의 수, TV는 외장 재질이 대리점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착시 효과 제품
용량과 규격을 달리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제품도 많다. 최근 대형 할인점에 등장한 ‘1.25ℓ’ 코카콜라도 할인점용이다. 9백80원짜리 이 코카콜라 병 크기는 1.5ℓ 병과 큰 차이가 없다.
코카콜라 관계자는 “(대형 할인점에서) 펩시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든 제품”이라며 “펩시가 워낙 가격을 낮춰 받다 보니 일반화된 1.5ℓ로는 경쟁이 버거워 1.25ℓ짜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할인점에서 1.25ℓ 제품의 마진이 높아 원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소비자에게 1.5ℓ로 보이게 하려고 의도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착시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백세주도 할인점용에 납품되는 것은 300ml, 일반 슈퍼 등에서 판매되는 것은 375ml이다. 국순당이 최근 출시한 ‘삼겹살에 메밀한잔’도 300ml와 330ml로 구분돼 있다. 국순당 측은 “용량을 달리해 납품하는 것은 가격 할인 착시 효과를 노린 게 아니라 작은 술집들이 대형 할인점에서 술을 구입해 파는 ‘역류’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할인점과 납품업체의 관계는?
대형 할인점의 상품 구매·마케팅 담당자(MD, 머천다이저)는 ‘납품업자의 `왕’이다.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든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형 할인점의 MD 김모씨(35)는 “업계의 매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할인점에서 ‘싼값’은 절대적이면서도 유일한 조건이다. 제품을 싸게 공급하고 매출을 늘리려면 납품업체를 닦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이익을 늘리는데도 납품업체를 활용한다. 판매비를 줄이기 위해 청소비, 판매직원 인건비를 떠맡긴다. “납품업체와 거래가 공평치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를 부담하더라도 납품하겠다는 업자가 한참 줄을 서 있습니다. ‘갑’인 할인점이 손해 볼 장사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게 바로 경제잖아요.”
한마디로 할인점이 우월적 지위를 맘껏 ‘악용’하는 상황이다. MD 6년 차 황씨가 겪은 ‘경제’의 실태는 놀랍다. 할인점 창고에서 5백여 만원어치의 상품을 도난당했는데 그 책임을 몽땅 식품회사가 졌다는 고백이다. `우리 직원이 책임지기엔 ‘버겁다’고 했더니 식품회사 직원이 바로 와서 카드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또 업계에는 ‘연좌제’도 있다. 그는 MD에게 한번 찍히면 다른 할인점에도 납품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같은 할인점에 근무하는 한 MD는 팔다 남은 재고를 떠안으라고 했으나 끝내 버틴 농산물 생산업자에게 계약대로 계산해준 뒤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례적인 ‘상황’은 금세 MD 사이에 소문이 돌았고, 납품업자에겐 소문이 곧 낙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납품을 계약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로비가 치열하다. 윤리 경영이 강화되면서 ‘떡값’이나 매출의 일정 부분을 상납하는 리베이트를 비롯한 현금 거래는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뒷거래는 보다 교묘해지고 있다. 그는 “자동차 할부금을 납품업체에 넘기거나 납품업체의 지분을 받았다는 이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 “공정위 등에서 조사가 나오면 할인점에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라”면서 입단속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할인점과 납품업체의 불공정 거래 행위는 극심하지만 관계 당국의 실태 파악과 처벌 수위는 미흡하다. 유통 과정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감시하는 정부 기관은 공정거래위원회. 그러나 납품업체가 호소하는 할인점의 횡포에 비하면 공정위의 `조사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 2000년부터 2005년 8월 현재까지 할인점을 상대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 조치를 내린 것은 30건뿐. 과징금 액수도 21억3천여 만원(누계)에 불과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위반 수위가 약하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과징금을 부여하지 않았다.
납품 실태 파악도 미진하다. 공정위가 2004년 9월에 발표한 납품업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납품업체의 44%가 할인점의 거래 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시급히 개선돼야 할 거래 관행으로 ▲경품·할인행사를 위해 낮은 납품가격 강요(42%) ▲광고비, 인테리어비 등 납품업체 전가(22%) ▲부당한 거래 중단·종료 행위(15%) 등이 지적됐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응한 업체는 6천여 납품업체 중 4백70개에 그쳤다. 응답률 8%인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납품업체의 실태를 분석한 것이다.
공정위 유통거래과 강신민 사무관은 “납품업체에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접촉하면 아예 조사에 응해주지 않는다. 할인점이 갖고 있는 계약서와 전표 등을 근거로 조사를 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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