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만만… 독립 예산서
엄마 눈치 안 보고 <섹스 앤 더 시티>를 즐기고 싶고, 러브 호텔 대신 집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고, 멋진 집에서 우아한 독신 생활을 만끽해 보고도 싶은 이 땅의 싱글녀들. 독립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데…. 3천만원으로 시크한 ‘스위트 홈’ 꾸미기, 과연 미션 임파서블일까?
 | 홍보 대행사에서 근무하는 29세의 K. 직장 생활 5년 차의 싱글인 그녀는 요즘 때 아닌 가출의 열병에 들떠 있다. 물론 그녀가 원하는 건, 폼 나는 형태의 가출, 바로 독립이다.
사실 K가 ‘나만의 집’을 꿈꾸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겨워 ‘나, 가출해 버릴 거야’를 연발하던 사춘기 시절부터 이미 막연하게나마 독립의 꿈은 싹텄고, 통금 시간에 늦을세라 눈썹 휘날리게 밤길을 뛰어다녔고, 대학 시절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 친구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 마지않았다.
고된 업무에 녹초가 되는 지금은 밥·빨래·청소가 풀 서비스되는(그것도 공짜로) 집에서의 생활이 꼭 만족스럽지 않은 것만도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기에 겪어야만 하는 일상 속의 자질구레한 불편함은 여전하다.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 생각을 안 하는 부모님 때문에 <섹스 앤 더 시티> 시청을 포기해야 할 때, 모처럼의 휴일에도 아침 댓바람부터 울려 퍼지는 칼질하는 소리, 물소리에 늦잠을 방해받을 때, 내가 입고 나가려던 옷을 얄밉게도 언니가 먼저 입고 외출해 버렸을 때마다 울컥 치솟는 짜증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글자는 ‘독립’.
하지만 다소간의 귀차니즘, 경제적인 부담감, 무엇보다 엄마가 차려 주는 맛깔난 밥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차일피일 독립을 미루던 K. 그녀가 새삼스럽게 독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6개월 전,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다. 데이트 초기엔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만남의 횟수가 잦아지면서 이 카페, 저 레스토랑을 전전하는 것도 서서히 지겨워진 K. 게다가 3개월 전, 첫 섹스를 시작한 이래 둘만의 호젓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러브 호텔 입구에 들어서서 방 열쇠를 받을 때까지의, 짧지만 얼굴 화끈거리는 시간도 싫고, 혹시라도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는 몰카 때문에 불 끄고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사랑을 나누는 건 더 짜증난다.
서른을 바라보는 싱글녀에게, 멋진 집은 안정된 연애와 업그레이드된 섹스 라이프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프라이버시가 완전 보장되는, 그리고 안락하면서도 심미적인 공간의 절대적인 필요성. 그래서 K는 마침내 결심했다. <주홍글씨>의 이은주처럼, 우아한 싱글의 삶과 자유 분방한 사랑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신만의 집을 가져 보기로.
문제는 예산이다. 현재 그녀가 수중에 지닌 돈은 5년간의 직장 생활해서 꾸준히 모은 3천만원. 결혼이나 유학, 혹은 창업 등의 미래를 대비해서 모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만큼 미련 없이 마이 스위트 홈을 위해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월 수입은 2백만원 남짓. 그럭저럭 독립은 가능하지만, 결코 넉넉지는 않은 재정 상태다.
하지만 K가 원하는 건 단지 독립이 아닌,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폼’나는 집. 그런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끝에 그녀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몇 가지 묘안을 발견해 냈다. 다음은 멋진 싱글 라이프를 꿈꾸는 K의, 뻔뻔하지만 야심찬 독립 비용 예산안.
강북에 위치한 13평형의 복층식 원룸
이 땅의 모든 싱글이 한 번쯤은 꿈꿔 봤을 복층 구조의 원룸. 임대료 비싼 강남에서 얻으려면 지금의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홍대 앞 정도라면 의외로 무리 없이 구해 볼 수 있다. 부동산 사이트와 복덕방을 오가며 시세를 알아본 결과,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50만원 정도면 풀 옵션 복층 원룸에도 입주 가능. 매달 50만원의 월세를 내기가 좀 부담스럽지만, 대신 밖에서 돌아다니며 쓰는 데이트 비용이 세이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큰 지출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단, 복층 원룸에서 사는 호사를 누리려면 쇼핑 비용은 어쩔 수 없이 반으로 줄여야 할 듯. 필요 예산 2천만원+α
시크한 벽걸이형 미니 오디오
가끔 거울을 보며 춤추기를 즐기고, 남자친구와 재즈를 들으며 와인 잔을 기울일 때가 가장 행복하며, 때로는 이니그마의 음반을 틀어 놓고 끈적한 섹스 무드에 빠져 보고도 싶다. 보다 충만하고 감각적인 순간순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음악은 필수. 따라서 음향 좋은 오디오만큼은 필요한데, 문제는 비좁은 공간. 벽면에 탈부착이 가능한 평면형 디자인의 미니 콤퍼넌트가 해답인 듯. 공간도 거의 차지하지 않을뿐더러, 사이버틱한 디자인 덕에 ‘있어 보이는’ 인테리어 장치로도 그만이다. 역시 옥션 사이트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다 맘에 드는 것을 골랐다. 필요 예산 45만원.
비즈 블라인드로 분위기 업!
비즈 블라인드는 여러모로 유용한 소품이다. 창문에 늘어뜨리면 실내에 아롱거리는 빛을 드리워 주고, 주방과 거실 사이에 걸어 두면 지저분한 풍경을 가려 주는 멋진 파티션이 된다. 침대 앞에 걸어 두면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심플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연출하려면 빗방울을 연상시키는 투명 비즈가 적당할 듯. 아트 앤 라이프에서 점찍어 둔 비즈 블라인드가 4만2천원이었나? 필요 예산 4만2천원, DIY로 직접 제작하면 그 이하.
매트리스와 맞춤 제작 시트
아래층은 거실 겸 각종 생활 공간으로 쓰고, 위층은 침실로 꾸미기로 했다. 복층 원룸의 2층은 천장이 매우 낮으므로 침대 높이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 침대 대신 매트리스만 놓기로 결정. 역시 옥션 사이트에서 확인한 결과, 15만~16만원이면 퀸 사이즈의 최고급품 매트리스를 구입할 수 있다. 여기서 관건은 남자친구와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곳인 만큼 침구 세트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 그런데 고급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려니 가격이 엄청나다.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남대문 대도상가의 이불 가게를 찾는 것이 베스트라는 정보를 얻었다. 이불은 10만원 미만, 베개나 쿠션 등속은 5만~6만원이면 원하는 디자인과 품질의 침구류를 맞춤 제작할 수 있다. 필요 예산 65만원 안팎(매트리스 1개+베개 2개+이불·시트 각 2장)
‘최소한’만 갖춘 중고 가전제품
일단 집이라는 ‘하드웨어’에 큰돈을 투자했으니, 가전제품이나 가구 같은 ‘소프트웨어’에서는 지출 폭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꼭 사야 할 아이템은 TV, 토스터, 다리미, 그리고 커피 메이커와 전기밥솥 정도. 세탁기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그리고 에어컨은 옵션 품목이니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고, 컴퓨터와 헤어드라이어 정도는 집에서 쓰던 것을 들고 가면 된다. 그리고 가전제품은 소모품이나 마찬가지라 굳이 새것일 필요가 없다. 옥션 사이트에 들어가 시세를 알아본 결과, 20인치 TV는 15만원 안팎, 토스터와 다리미, 커피 메이커는 12만~13만원에 세트로 구입이 가능하고, 밥솥은 4만~5만원이면 괜찮은 물건을 고를 수 있다. 필요 예산 32만~33만원
디자이너 브랜드의 플로어 램프
인테리어의 완성은 역시 조명. 다른 건 몰라도, 조명만은 좀 사치를 부려 보고 싶다. 가장 적당한 아이템은 역시 플로어 램프. 이것 하나만으로도 200% 이상의 인테리어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다 다른 조명 제품과는 달리 이사할 때도 가져갈 수 있으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전혀 손해가 아니다. 리빙 잡지에서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을 살펴보던 중 눈에 띈 아이템은 ‘빛의 마술사’로 일컬어지는 잉고 마우러의 디자인. 청담동의 카페나 디자인 숍에서 자주 본 기억이 난다. ‘악’ 소리가 나는 가격이지만,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결정. 필요 예산 2백80만원 선.
시원한 공간감을 살려 주는 투명 의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남궁선의 말에 의하면, 좁은 공간에는 투명한 소재의 가구가 제격이란다. 발품을 판 결과, 최고 제품은 카르텔 사에서 판매하는 투명 플라스틱 의자.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선호하는 아이템으로, 개당 22만원으로 의자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이 의자로 인해 얻을 인테리어상의 효과를 고려하면 투자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딱 두 점만 구입하자. 식탁용 의자로 놓아도 폼 나고(식탁은 옵션에 포함된다), 코너에 나란히 놓아도 장식 효과가 그만이다. 필요 예산 44만원
다용도 DIY 박스
드레스룸이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좁은 원룸이라 캐비닛 하나 들여놓기도 벅차다. DIY용 나무 박스를 캐비닛 겸 선반 겸 수납장으로 활용할 수밖에. 단조롭게 늘어놓는 대신 높낮이를 다르게 조절해 재미있는 모양으로 쌓아 놓는다면 그런 대로 보기 좋은 인테리어 아이템이 될 것 같다. 개당 2만원인데, 한 10개쯤은 필요할 듯. 필요 예산 20만원
K양, 계산기를 두드려 봤더니…
현재 예산 3천만원 예산안 아파트 임대 비용 2천만원(매달 들어가는 월세 50만원은 월급으로 해결), 가전제품 구입비 80만원 안팎(중고 생필품 및 오디오 포함), 가구 구입비 80만원대(매트리스, 투명 의자, DIY 박스 포함), 침구 제작비 50만원대, 조명 기구 구입비 2백80만원대, 그 외의 자질구레한 필수품 구입비(ETC의 품목) 1백만원대.
예상 총액 2천5백90만원+α
결론 3천만원으로도 폼 나는 집에서 살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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