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으로 세계를 누빈 가족들
해외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해보지만, 막상 가려면 발목을 잡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돈, 체력, 언어 문제, 두려움…. 다 떨치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세 가족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 그들은 여행은 곧 삶의 연장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든든한 심장을 가지고 돌아왔다.
case 1 부부가 함께 자동차 여행하며 책 쓰는이화득·이미경 부부
“여행 갈 때마다 부부 문제 하나씩 들고 가 풀고 옵니다”
‘여행과 지도’. 사무실 문 앞에 붙은 명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대의 컴퓨터 앞에 나란히 부부가 앉았다. 외모도 어찌 그리 남매처럼 닮았는지 ‘부부는 닮아야 잘 산다’는 말은 이 사람들이 퍼트리고 다닌 것 같다.
이화득(48세)씨는 자유분방한(?) 외모와 얼른 겹쳐지지 않는 직업을 가졌다. 동성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으로 20년째 근무하고 있는 것. 이미경(40세)씨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전업주부.
부부가 이번에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쓴 <세계인이 꼭 가보는 유럽의 비경>(서울문화사)도 이 방에서 만들어졌다. 부부는 여행지에서 생긴 일들과 느낌을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며 써 내려갔다. 꾸밈없어 더 와 닿는 글 읽는 재미도 좋지만, 특히 이 책의 강점은 이화득씨가 매킨토시로 직접 그린 지역별 상세 지도에 있다.
“해외여행을 저렴한 비용으로 하려면 으레 배낭여행을 생각하는데 그건 참 못할 노릇이에요. 줄이고 줄여도 자기 키만 한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제대로 못 먹고 한데서 자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그러면 주위의 풍경이 본래의 제 모습만큼 아름다워 보이겠습니까? 차를 렌트해 다니면 배낭여행보다야 더 들지만 그래도 패키지 여행상품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죠. 내 마음대로 다닐 수도 있고요. 문제는 운전하는 것이 겁나는 건데, 서울보다 쉽다면 괜찮은 거 아니겠어요. 뭐든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죠.”
여행 전도사처럼 열을 올리는 남편을 놀리듯 아내 이미경씨가 한 수 건넨다.
“남편의 여행벽은 어렸을 때부터 유별났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에서 시집간 누나 찾아 혼자 기차 타고 평택까지 갔대요. 중학교 때는 마당에다 텐트 치고 처마 밑에서 코펠에다 밥해 먹고. 어머니가 참 별난 놈이다 싶으셨대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사주에 역마살이라도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지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위로 누나 둘 형 둘에 까마득한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는데 누나들 사회과부도는 늘 제 차지였죠. 나달나달해지고 뜯어져 달아날 때까지 들여다보곤 했으니까…. 글쎄요. 역마살은 이곳이 싫어 자꾸만 다른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이겠지만 저는 다만 늘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있을 뿐이에요. 다행히 선생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졌으니 방학을 이용해 갈 수 있지요.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있는 거죠. 여행도 생활의 일부니까요.”
이런 별난 남편을 둔 이미경씨가 여행에 눈을 뜬 건 2000년. 남편을 따라 유럽여행을 처음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공부는 없듯이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자연스레 겉으로 드러난 것이겠지만, 남편이 아내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찍느라 길 찾느라 정신없는 남편이 놓치는 것들을 아내는 섬세한 눈길로 담아왔고 남편은 그것이 신통했다고. 지금은 아내의 글이 독자들에게 더욱 인기다.
“남편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일상에 쫓겨 살 때는 미처 몰랐던 이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요. 내 남편이 본래는 너무나 자유롭고, 너그럽고, 자상하고, 귀엽고, 이렇게 잘 노는 사람이었구나. 여행 중에는 신기하게도 잘 안 싸웠는데 두 번째 유럽여행 중 독일 아우토반에서 하루 종일 심하게 다툰 적이 있어요. 제가 지도를 잘못 읽어줬다며 남편이 짜증을 냈는데 저는 이이가 속이 좁아 화를 내는 거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제 실수라는 걸 알게 돼서 사과를 했지만 남편이 쉽게 풀지를 못하더군요.”
남편에게 점점 물들어가기 시작해 지금은 남편보다 더한 여행광이 된 이미경씨. 부부는 이렇게 길 위에서 닮아갔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모든 분들, 아이들 걱정하지 마시고 두 부부만 다녀오세요. 사회의 기초는 부부 아닙니까. 여행을 통해 부부가 단단하게 묶이면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해집니다. 어머니가 자유로워지면 아이들도 편해집니다. 부부가 둘이서 시간을 보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가서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오세요.”
부부는 자신들이 여행작가가 아닌 여행가로 불리길 원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늘 낯선 세계를 먼저 개척하려 떠나기 때문. 부부가 한발 한발 걸어가며 그리는 지도는 뒤이은 사람들에게 ‘자주 다니는 길’을 만들어준다. 또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 이들, 길 위에서 주워올 많은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Tip
부부끼리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친지들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 전적으로 맡길 사람이 없다면 비상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하고 떠난다. 아이들이 어리지 않다면 독립심을 키워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화득·이미경 부부는 아이들과 노모를 누님에게 부탁하고 두 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낮에 잠깐 집안일을 해줄 도우미를 쓸 생각이다.
여행을 떠나 겪는 가족간 충돌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여행 중에는 돌발적인 상황과 피로로 인해 다투기 쉽다. 낯선 곳에서는 더욱 서로를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면 되도록 빨리 풀어야 한다. 우선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기 때문에 싸우기 쉽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발씩 물러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case 2 어린 딸, 아들까지 데리고 해외 여행 자주 떠나는 사석원·김수연 가족
“의견 충돌 잦지만 가족끼리 대화가 많아져 좋아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사석원(44세)이라는 화가의 이름을 언뜻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노랗고 빨간 동물 그림을 달력에서 본 적이 있다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칠지도. 2000년대를 빛낼 새별 100인 중 한국화 부문 대상자, 한국의 인기작가 1위로 선정되기도 한 그는 남다른 여행 취미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오랫동안 꿈꿔오던 쿠바여행에서 돌아와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림, 담백한 글을 담아 〈황홀한 쿠바〉(청림출판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큰딸(12세)이 태어나고 1년 반이 지났을까.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태국과 홍콩에 갔었죠. 말은 못하지만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그 후로 둘째 아들(9세)까지 모두 함께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녀왔죠. 북경에는 딸이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에 둘이서만 갔었고. 가족 모두 실크로드를 여행했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사막의 모래바람을 뒤집어쓰고 걸어다니며 고생도 많았지만, 사막은 일상에서 흔히 겪지 못하는 특별한 체험과 감동을 주는 곳이었죠. 어른들은 사색에 잠겨 걸을 뿐이었지만 아이들은 몸으로 사막을 즐기더군요. 모래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낙타와도 금세 친해지고요.”
이렇게 단련되다 보니 그의 가족은 우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없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힘이 많이 들지만 아이들은 걷는 것을 좋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어도 투정이 없다. 여행지에서는 특히 아이들의 불만을 일일이 받아주지 않는다고. 따끔히 혼내도 잠깐, 천진한 아이들은 자꾸만 달리지는 환경에 금세 정신이 팔린다.
“여행 중에는 가족들이 단합이 더 잘 돼 다른 어려움은 없지만, 역시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곤란스러울 때가 많아요. 가족 중 저만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라 어찌어찌 넘어가지만,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가족 모두가 외국어를 할 줄 알아야겠다는 필요를 느껴요.”
비린 것을 유독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여행하며 생선을 먹지 못하면 칭얼대기도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입에 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잘 시켜놓은 덕이다.
“우루무치로 여행을 갔을 때 아이가 힘들다고 떼를 써서 물통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줬더니 그 뒤로는 절대 짜증을 안 내던걸요. 가족 여행을 떠날 때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이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모든 면에서 적응을 잘 해요. 외국에 나가면 병도 잘 안 걸리고 시차적응도 빠르죠. 음식도 평소에 조금씩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키면 다 극복할 수 있어요. 여행은 다른 말로 맛을 보는 것이라 생각해요. 음식이 곧 그들의 문화니까요. 먹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현지인들이 먹는 것을 그대로 먹어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산교육이 되죠.”
이렇게나 자주 가족들이 여행을 다니려면 경비도 만만치 않으련만.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림이 좀 팔리면 가고, 책이 좀 팔리면 떠나고. 여행 경비는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들지 않아요. 많이 걷고 음식도 까다롭게 골라 먹지 않거든요. 그래도 아주 절약하는 여행은 안 해요.”
그의 집 거실에는 여행지에서 사온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하다. 그가 낯선 곳에 가면 제일 먼저 찾는 재래시장에서 사 모은 것들로 각 나라의 모습과 삶의 색깔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골라온 가족들의 보물이다. TV가 없는 거실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행 사진들,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가족들은 날마다 추억으로 여행을 떠난다.
원색의 물감을 뒤집어쓰고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동물과 물고기들, 흥에 겨운 사람들은 그가 돌아본 세계의 어느 곳으로부터 왔을까. 그의 그림은 또 다른 의미의 세계 지도다.
Tip
여행 경비는 어떻게 모아야 하나요?
사석원씨의 경우 즉흥적으로 떠나기 때문에 여행을 위해 정기적인 적금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과 책이 좀 팔리면’ 떠난다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떠나는 셈이다.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경비를 예상해 목표액을 정하고 여행적금을 드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도 저금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다.
case 3 결혼하자마자 1년 동안 14개국 돌고 온 이강훈·강영의 부부
“신혼살림, 패물 장만 대신 세계여행 떠났죠”
젊은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떠나면 주위 사람들은 격려를 보낸다. 아직 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그들의 용기와 결단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더 큰 부담을 안고 떠나는지 모른다. 아직 무엇도 이뤄놓은 게 없는데, 다녀와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이강훈(31세)·강영의(28세) 부부도 이런 부담과 고민을 안고 2003년 5월 23일 서울을 떠나 유럽과 지중해 일대, 중동과 남미 지역의 14여 개 국가들을 여행하고 2004년 4월 14일 돌아왔다. 2002년 봄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서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이강훈씨가 결혼 전부터 강영의씨를 세뇌시킨 결과, 아내도 줄곧 여행을 준비해왔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은 쉬웠어요. 떠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쉽지 않았죠. 준비를 하는 동안과 가서 석 달간은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인터넷으로 접한 한국의 소식이 탄핵과 총선으로 너무 어지러워 부부는 예정보다 귀국 일정을 당겼다. 몇몇 아는 사람들에게만 알리고 조용히 떠나 여행이라기보다는 살다 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한 국가에 한 달 정도씩 머물며 느릿느릿 다녔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던 이유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도 있었지만, 다른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전 프리랜서 생활로 지쳐 있기도 했고, 아내도 나름의 목적이 있었죠.”
결혼 전 3년간 대한한공 스튜어디스로 일했던 강영의씨는 결혼을 하며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뒀다.
“천성이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요. 답답했어요. 뭔가 창의적인 일을 간절히 하고 싶었어요. 퇴직과 결혼, 여행이 동시에 시작된 셈이었지요. 여행을 염두에 두고 신혼살림도 장만하지 않고 반지도 예물도 안 하고 그 돈을 여행 경비로 모았어요. 그리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사진 아카데미에 다니며 사진을 배웠어요.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을 계획한 거죠.”
그동안 모은 것과 일 년간 바짝 번 돈을 합쳐 5000만원을 통장에 넣어놓고 여행길에 오른 부부는 그곳에서 또 다른 일상을 맞는다. 한국에 두고 온 것이 그리울 때는 쌀을 사서 밥을 해 먹으며 달랬다는 부부는 조용하지만 알찬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짐을 꾸리며 집에 남은 물건도 여행을 생각해 꼭 필요한 것만 샀다고 생각했는데, 배낭 하나에 든 걸로도 족하다는 걸 알고는 놀랐어요. 그러다 여행 중 항공사의 실수로 배낭이 다른 곳에 가버려 3일 동안 배낭 없이 보냈는데, 그때도 살아지더군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귀한 경험이었죠.”
준비했던 경비 중 3500만원을 썼는데, 어마어마한 경비를 쓰고 오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적게 들었다고 놀라워한단다. 이강훈씨는 때에 따라 더 절약할 수도 있었다며, 여행 경비는 크게 두려워할 게 아니라고 말한다.
부부는 요즘 각자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강훈씨는 일러스트가 들어간 여행 동화집을, 강영의씨는 찍어온 사진을 묶어 낼 예정. 앞으로 먹고살 일이 좀 걱정이라며 웃는 그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은 찾을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온 부부의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
Tip
떠나기 전 꼭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세계 공통 언어인 손짓 발짓만 믿고 외국어를 소홀히 하면 가서 크게 후회한다. 이강훈·강영의 부부는,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느끼고 오려면 언어를 충실히 익히고 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여행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 이것저것 힘들고 불편한 일이 많지만, 가장 주의할 것은 소지품 관리다. 도난사고도 있지만,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애초부터 짐을 많이 가져가지 않는 게 모든 활동에서 자유롭다. 배낭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옷은 현지에서 사 입거나 세탁해서 입는 게 최고. 쓸데없는 짐을 끌고 다니는 게 여행 중 가장 큰 고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