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꼼꼼하다고 자부해 온 터 였다.
물건을 대체 어디다 뒀는지 헷갈리는 경우는 분명.... '일당 백'짜리 아이들 손을 탄 게 틀림 없었다.
나름대로 치밀한 남편조차 나한테 소름끼쳐 하는 것 중 하나가....너무 좋은 기억력으로 십여년 전 일도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쯤....으로 시작되는 분석력인데......
그런데 요즘, 문제가 심각해졌다.
퀴즈 프로그램에 나와서...자기가 일등 할꺼라고 큰소리 빵빵 치던 사람이 1차 O,X문제에서 탈락하는 것만큼이나.....
몇 주 전, 집에 불을 낼 뻔한 일도 스스로가 쇼크를 받을만큼 심각한 일이어서 그 후 꽤나 신경을 곤두세워 내 기억력을 더듬는 일이 잦았는데....그게 글쎄.......신경을 쓰면 쓸수록 횟수를 거듭해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바로 전날, 함께 어학강의를 듣는 지인과 스케쥴을 짜가며 강의를 함께 듣자고 약속을 철썩같이 하고도...그것도 못믿어 옆에 있는 달력에 꼼꼼히 표시까지 해뒀는데....
난 그 담날 아침.....유치원 가는 울 딸내미를 차에 태워 열심히 빠이빠이를 해주고는 집으로 들어와 신문을 펼쳐들고 사설을 읽다 세대전화가 걸려오고서야 부랴부랴 준비를 하는 그런 종류의 건망증은 애교에 가깝다.
얼마 전...두 아이들을 앞세우고 얼른 서둘러 외출할 일이 생겼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미리 기다리고 있는 딸아이의 무례를 꾸짖으며 '그렇게 하면 다른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잖아~~~'...................까지는 나중에.....생각이 났다.
나~~중에.
볼일을 보고.....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그것도 모자라 근처가 사무실인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들과 책을 보고 놀다 놀다......그렇게 5시간여가 흐른 뒤....
우린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딸아이가 엘리베이터 타고 먼저 올라가고...
먼저 집에 들어간 남편이.....기가 질려 하며
'너.....문을 열어놓고 갔더라??'
'.......웅??'
'아주 약간 열린 것도 아니고......아주 최대한 활짝~~열어놓고........
도둑더러 아예 다 들고 가라고......저 쪽으로 문을 다 몰아놓고 갔더라??'
'................웅??'
'.....기억이...안나??'
'웅!!'

우리가 어떻게 나갔었고, 누가 나중에 나갔고, 누구랑 나갔고, 언제쯤 나갔었는지가.....머릿속이 깜깜해지며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났다.
그 후 집에 들어와 휘휘 둘러보며 도둑이 뒤지고 간 흔적이 없다고 판단하고서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딸내미를 야단치며 내려갔던.....그것이....아주 나~~중에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제서야...스스로가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서 어지럽던 내가 정신을 추스리고 남편한테 대꾸할 수 있었다.,
'도둑 입장에서도......너무 활짝 열린 문이 황당해서 못들어왔을꺼야!!!'
.
.
.
.
'아...그리구...조심해!! 내 머릿속에...지우개가 들어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