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집
네버엔딩 스토리(한 여자 이야기) 2007/06/21 14:30   http://blog.azoomma.com/liebe980/250543

  마음에 눌러 놓고, 피하며 살고 싶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내 고향 강릉에서....

 

 추억은 상처마저도 미화되어 아름답게 포장하는 힘이 있다던가요...

 

그리 자랑스럽지 않을 내 팔자타령이...차곡히...빼곡히... 쌓여있는 집...

 

 어렸을 적 숱하게 읽었던 '콩쥐 밭쥐'의 계모나...신데렐라의 새엄마와 두 언니의 설정이 실제로 그리 과장되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며 버텼던 내 어렸을 적...그 집..

 기찻집....

 

 그리 우아하지 못한 천성과, 다소 지나친 지독한 자식사랑으로 똘똘 뭉쳐...

그 자식이 남기고 간 두 어린 손녀마저 눈의 가시로 거추장스러워 하셨던 우리 할머니.

 

 그에 비해 36년을 살아낸 내 인생 속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완벽한 인품을 갖추셨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아주 조용히...드라마의 한장면처럼..아주 천천히...그렇게 돌아가신 후, 난 의식적으로 강릉 기찻집을 내 생활에서 거의 배제하며 살고 있었어요.

 저 또한... 뭐든지 마음에 품고 다독이며 살 수 있는 고급스런 성품이 아닌지라 가끔 '울컥'하며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들을...억지로 구겨넣으면서까지..

 

 내 아이들, 내 남편, 내 시댁 위주로 거의 올인하며...딴엔 열심히 살아낸다며 자조하고..그렇게 버티고 있었어요.

 

 가끔 들리는 할머니 소식에...괜스레 우울해져 혼자 눈물 짖다가도, 마음에 품지 않고 그냥 훌훌...그렇게 털어버리고 비교적 편안을 가장하며....억지로....

 

 세상에 둘도 없이 꼬장꼬장하시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급격하게 의식을 놓으신 치매 증상이, 산모 초기 진통처럼 점점 간격을 좁히며 죄여오더니...이젠 거의 맨 정신일 때가 없는 것처럼...

 

 내가 지금 있는 데가 어딘지, 내 앞에서 자꾸 귀찮게 지껄이는 자식들이..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지...

 '강릉'이라는 말만 들어도 턱근육이 달달 떨리면서도 입술을 수백번 꼭꼭 깨물며 비교적 덤덤한 척 하는 저조차...지켜보기가 버거울만큼..바람 앞의 촛불같이 근근히 버티시는 할머니의 생명이 불안해서.....

 

 이제까지 무심한 척 하며 내 살아내기에 버겁고 벅찼던 모든 감정들을 더이상 감추기가 무의미해질 정도로...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여위고 계세요.

 

 핏줄이라 무서운 건지...아님, 저도 자식 낳고 살다보니 이제 예전의 그리 아름답지 않은 기억들이 추억으로 미화되어 그런건지...아님, '그렇게 냉정하셨던 할머니의 속 뜻이..알고 보니 깊은 뜻이 있더라'..이런 드라마 줄거리도 아닌데.....

 

 자꾸 울컥 울컥...할머니만 생각하면 그 동안 억지로 눌러놨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그리 터져버려서...

 

 조금 더 지나면 아무 쓸모없는 고해성사가 될까봐....이제까지 무심했던 제 자신이 너무 밉고 싫어질까봐...

 

 할머니가 의식이 조금이라도 정상이셨을 때. 그 때 이 말을 해야 했어요.

 

 할머니...사랑한다고....할머니...감사하다고....

 

 지금은...아무리 사랑한다 해봐야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고 그저 '그래 난 잘 있다'는 한결같은 대답밖에 못하시지만, 그래두 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건..할머니 덕분이라고...

 

 할머니....보고 싶다고....

 

 


 * 할머니가 며칠 전 자식들한테 쓴 편지예요.

   밥 드시는 것조차 힘겨워 하시는 할머니 상태를 들어 잘 아는데...자꾸 헛소리 하시는 할머니 상태를 너무 잘 아는데....

 이 날은 할머니 컨디션이 최상이었다네요.

 컨디션이 좋다는데도...별별 말씀과, 노래까지 박수치며 하셨다는데...오히려 제 마음이 더 서늘해지는 건..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