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머리 속이 시끄러워진 시어머님이 우리가 늦은 저녁을 먹지 않고 막 차려낼 즈음 전화가 와서 얘기가 좀 길어져 있었다.
한참을 대화를 나누다, 그냥 기다리고만 있던 남편이 슬쩍 일어나더니 라면을 끓이는 시늉을 하더니 다 끓인 줄 알았던 라면 그릇이 싱크대 밑에 담궈져 있는거다.
오랫동안 받던 전화를 끊고 서둘러 상을 내려고 보니 남편은 아주 심각할 때만 짓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눈까지 뚱그렇게 뜨고는 '그거....냄비...뚜껑이..글쎄...안열려~~' 한다.
수증기로 압착이 되며 붙어버린 모양이라 예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태연했던 나와는 다르게, 남편 딴엔 별의 별 짓(?)을 다 해봐도 안열리는 냄비가 그 상황에서 그리 심각할 수가 없었나 보다.
뚜껑 손잡이 부분 나사가 다 풀려있는 모양새로 봐선 남편이 그렇게라도 수증기를 뺄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식탁 옆에 나와있던 '뺀찌'를 사용해 본 것 같기도 하고, 칼이나 가위의 날을 비집어 넣어 봤다고도 하고....내 통화시간과 비례해서 내내 낑낑거린 남편과 냄비와의 한판 싸움에서 냄비가 승리를 거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그거 포크로 수증기 구멍을 들어올리면 돼...' 하며 시범을 보였더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라면은 굵기로는 우동 버금가게 퉁퉁 불어 있었다.
암튼 그 날의 그 싸움은 냄비가 K.O승으로 이겼다.


면허 딴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는데....(작년 6월쯤 땄다.) 아직두 우리집 차 핸들 잡아본 건 다섯 번두 채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올 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유유히 몰고 다닐꺼다 맘 먹구 있었다.
그나마 익숙해 있었던 승용차랑은 우리집 차 생겨먹은 게 달라서 첫 시동부터 뭔가 맘에 안들더니....운전석에 앉으면 비교적 여유 있던 학원차 운전할 때와는 자꾸 내 운전태도가 180도 달라지는거다.
차 폭과 시선 높이와 핸들 감각과 암튼 비슷한 게 한가지두 없고 기어는 엉뚱한 데 달려있고 핸드브레이크도 발로 작동하는 거라 하니.....밥솥 운전만 열심히 하던 내 감각으로는....'전기밥솥'에만 밥을 하던 초보 주부가 가스 불로 '압력 밥솥'에 밥을 하라는 주문만큼이나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올 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 주말에 가까운 대학 교정으로 운전연습을 갔다.
아직 핸들 잡는 감각도 없는 나한테 남편은 자꾸 '상식' 운운 하며 주차를 해보라고 강요하거나 운전 법규를 설명하거나 핸들을 힘 줘서 억지로 돌리는 내 모습을 타박하며 혀를 쯔쯔 차더니 '애들이 널 닮으면 안되는데....' 하는거다.
그 순간까지 내내 핀잔과 야단을 듣고만 있다가 화가 나서 한마디 던졌다.
'우쒸....자긴 냄비 뚜껑두 못열면서.....'
'.......!?'
우히히.....주말의 싸움은 판정승으로 내가 이긴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