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초기 | ||
| ||
올해 초...내 영혼을 다해 의지했던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고....
한동안 제 정신 아닌 사람처럼, 뭘해도 헛도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후 그나마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려고 했는데...
친정 할머니께서 두어번 병원에 드다드시더니 결국은 뼈에 꾸깃꾸깃한 피부를 뒤집어 씌운 모양새로 그렇게 우리집에 다니러 오셨다.
원래는 맏이셨던 내 아빠 바로 밑....그러니까 형의 죽은 자리를 대신해 맏이 역할을 해야 하는 작은아버지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시고, 작은엄마도 ....그나마 교양있는 친척들이 입술을 깨물며 참고있어 망정이지....남의 집안 며느리 입장인 내가 봐도 정말 형편없고 아예 그냥 포기하는 게 속 편한....그런 부류였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고, 맏이네 있는 원주로 오셨으나.....
2박3일을 수발드시더니 결국은 기도원 핑게를 대시며 우리집에 모셔놓고 4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그렇게 흘러갔다.
정이 많고 인품이 온화해 늘 부모잃은 우리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신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오로지 자식밖에 없는 단순한 모정 하나로 그저....눈엣 가시로밖에 손녀들을 보셨던 할머니가....젊은 날엔 그렇게 꼬장꼬장하셨는데...
자식들을 향해선 세상에 둘도 없는 천하의 '엄마'역할을 마다않던 할머니도, 우리들을 향해선 항상 싸늘한 표정과 욕설과 구박을 일삼던 할머니가.....
정신연령 2세 수준에 머물러... 투정과 설움과 응석받이가 되어 손녀딸 집에서...그렇게 4박5일을 보내고 있었다.
'은미야~~~화장실 가자...은미야...속이 출출하니 자장면 먹고싶은데....은미야~~안경좀 씌워라...은미야~~틀니 어디갔나? 은미야~~은미야~~은미야~~'
맏이역할을 하셔야 하는 그 작은집에 오시기만 하면 만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항상 우리집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예상은 했지만, 작은엄마는 유달리 엄살을 부리며 '할머니 헛소리가 심하고 여기 못있겠다 하니 내가 죽겠다..증말....'이라는 험담에 화가 나서 당장 모셔오라고 전화를 했고, 작은엄마는 구세주 만난 형상으로 얼씨구 좋다하며 표정을 안감추고 얼른 모셔왔다.
며칠을 편하게 계시며 고모들 안부전화에도 '너무 편해서 여기 계속 있고싶다' 며 신이 나 하시던 할머니가.....4박5일 교육일정을 끝내고 손주사위에 눈에 보이자 부담스럽고 어려웠는지... 태도가 급변하여 '내가 왜 너희집에서 신세를 지는 신세가 됐냐?? 너희 키울 땐 이런 공은 기대도 안했는데....'하시며 눈물을 수십번 훔치시더니....
급기야 집에 가시겠다며 대책없는 떼를 쓰시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전화해 달라고 조르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못채우고 결국은 오늘 강릉으로 내려가신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손주사위 눈치보시며 꼬깃꼬깃 뭉쳐놓은 휴지더미며, 좁은 방 싫다하여 내드린 거실 한복판....내 부축으로만 더듬더듬 가시던 화장실이며..쓰시던 칫솔이며 매일밤 씻겨드린 목욕이며 틀니를 담가놓던... 일부러 예쁜 뚜껑달린 컵이며....모든 것들이 눈에 선하고 할머니 모셔다 드리라고 부탁하고 넘겨드린 그 손은.....그 때 그 기분은....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고 뒤돌아서는 엄마 심정...딱 그거였다.
방금 전 일들과 했던 얘기도 기억못하시던 할머니는, 왠일인지 가시는 차안에선 '은미야...정말 고생많았다...니가 해 준 전복죽 정말 맛있었다...'하시며 건강해라..건강해라...목놓아 우셨다.
할머니...할머니...제발 건강하세요. 이젠 아무리 욕설을 퍼부어도 즐겁게 들을테니...그 때 그 기력을 다시 한번 되찾아 그 꼬장꼬장한 할머니 모습 그대로 남아주세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저..몇 번이나 마비 오고...기절한 거 아시잖아요...? 그나마 친정이라곤 이제 할머니 한분 남으셨는데....할머니 안계시면 저 어떡해요...? 시댁서 설움받고도 그나마 할머니 계신 그 기찻집 생각하며 울음을 삼키고 버텼는데...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 저 어떡해요...? 할머니 아까 강릉집 편해서 너무 좋다고...목소리 톤높여 그렇게 좋아하셨죠? 전화로...'너희집서 니가 만들어준 전복죽이 너무 맛있었다...'며 고맙다 하셨잖아요...? 일년 내내 전복죽 쑤어 가라면 그렇게 할게요. 건강하게 조금만 더 오래 사세요..할머니...
사랑해요..할머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