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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집 할아버지께서 새해 들고 다섯번 째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아주 조용하고 평화롭게...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친하다고 생각되는 친구마져 '할아버지'라는 단어로만 짐작하고 그저....약간 슬프려니...좀 마음이 아프려니....그 선에서만 생각하고 그리고 그 정도의 위로만 해 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 제 살의 일부분이 떼인 듯이, 제 영혼의 절반이 없어져 버린듯이, 제 마음의 사막에서 유일한 오아시스였던 그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게...그저 꿈이거니...
너무 울어, 정신이 몽롱해지고 얼굴과 손의 근육이 마비가 되는 현상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도 믿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게 사실이 아니기를.... 아주 나쁜 꿈을 정초부터 꾼 것이기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왔던 기도를 몽땅 합해도 요며칠 주절거린 기도만큼 많지 않을 그 간곡한 기도를 수없이 되뇌였지만 그건 제가 직접 보았고 겪은 확실한 사실인가 봅니다.
맏이셨던 아빠가 돌아가시고, 올망졸망 남은 어린 두 손녀딸을 평생 어느 자식보다도 많은 정성을 쏟아 키우셨고....그 덕분에 없는 집에...부모없는 아이들치고는, 어느것 하나 빠지는 게 없이 클 수 있었고...할아버지 품을 떠나올 때까지, 가랑비 한번을 맞지 않고 무거운 가방 한번 들지 않고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클 수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산을 든 할아버지를 학교 정문 앞에서 뵐 수 있었고, 무거운 보조가방까지 들고 학교를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날 오후엔 저녁 도시락과 함께 남은 분량의 책을 제외한 다른 짐들은 자전거를 타고 오신 할아버지 손에 들려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한번도 '공부해라' 소리를 듣지 않고도 늘상 책이나 신문을 끼고 계신 할아버지 옆에서 자연스레 TV보다 책을 볼 수 있었고, 할아버지 품을 떠나오기 전까지...온실 속의 화초처럼....집에서 겪은 설움이 제일 큰 설움인 줄 알고....그렇게 살 수 있었던....그렇게 살게 해주셨던....그런 할아버지의 운명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예쁘게...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그렇게 숨을 거두신 순간....임신한 제 언니는 그 사실을 알고 까무라쳐 버렸고, 전 아직도 온기가 남은 할아버지의 얼굴과 손을 부비며 울지도 못하고 '할아버지'를 수없이 부르기만 했습니다.
너무 아프면 울지도 못한다던가요.... 통곡을 하며 울고 싶은데....제 표정만 살피는 제 아이들 앞에서 이성을 잃을 정도의 통곡을 하는 것도...허락치 않나 봅니다.
이제..뭘....어떡해야 할 지...머리 속만 아득해지고 어지럽습니다. 누군가 어깨만 툭 쳐도 봇물처럼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때문에... 제 아이에게 매일 불러준 만화 주제곡도 도무지 생각이 안나고....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맘껏 울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평소 성격 그대로...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자식들 손을 빌리지 않고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항문이 열려 변이 나온다던데...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그렇게 힘드셨으면서도 화장실에서 손수 용변을 처리하셨고 저희가 도착한 저녁 무렵엔 이미 정신이 혼미해지셨으면서도 불과 몇 시간 전에도 해드리겠다는 자식의 청을 마다하고 당신의 틀니를 손수 닦으셨답니다.
'은주, 은미가 왔어요. 아버지....' 눈물 많은 세째고모가 얘기를 몇번이나 해도 못들으시던 할아버지께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저희들의 목소리엔 반응을 하셔서 말씀은 못하셔도 손을 수백번 꼭꼭 잡아 의사 표현을 하시더니 임신한 언니가 '이제 5개월만 있으면 아기가 나와요..할아버지...' 하고 말씀드리자 배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런 정많은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삼오제까지 지낸 후.... 영원히... 목소리도...얼굴도...볼 수 없는 현실을 실감하게 될까봐....정신없이 치른 장례식이 지나고 삼오제가 지나고....막상 전화를 해도 할아버지가 받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게 될까봐....어떻게 이겨나가고 수습해야 할 지....아득하기만 합니다.
잘 드시지 못하고 체력이 그렇게 바닥이 날 때까지도 저희가 전화할 땐 '괜찮다...잘 먹는다' 하셔서 자식들과 저희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신지 이틀만에....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할아버지 없이....제가 세상의 설움에 맞서서 혼자 이겨내야 하는 날이 오긴 왔는데...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연세가 많아 늘상 불안하긴 했지만...그래도 이게 현실이 될꺼라곤 생각치 않고 마음의 준비도 채 할 시간을 주지 않고...그렇게 이틀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남은 거라곤....평범한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을 꽉채운 근조화환들과...1000명이 넘는 조문객과....조문객을 치르느라 기진맥진한 장례식장 식당 아주머니들과....4000만원이 훌쩍 넘는 조의금으로...그 동안의 할아버지 기품을 짐작할 수 있어, 자식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그런 것들이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이제 무엇으로 이렇게 비어버린 마음을 채울 수 있을 지...자신이 없습니다.
그나마....할아버지가 계셔서 살만하던 세상은...이제 그 할아버지라는 호칭 하나로도 눈물을 쏟을만큼 서러운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할아버지...할아버지...
사랑해요...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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