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인터넷 속 또 다른 나의 발견] 향수 & 한 여자 이야기

내 일곱살 적, 이성에 대한 기억은....유치원서 돌아오다 신발주머니가 바람에 날려갔고...그걸 보고 울먹거리던 나를 향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몇몇 남자아이들이 한참을 뛰어 강둑에 걸쳐있는 신발주머니를 주워 건내며 '울지마....' 했던 그 어렴풋한 기억 하나.

결석이란 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택시까지 잡아타고 데려다주신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덕분에....유치원서 늘어져 있는 나에게 '이거 먹어...' 하며 자기 간식을 내어주던 아스라한 기억 둘.

그리 신통찮은 기억을 억지로 꺼내본 이유는, 며칠 전부터 첫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 아들녀석 때문이었다.

예전엔 단순히 '누가 젤 이뻐?' 하는 유도심문에 '음...OO이...' 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상황이 이렇게 구체적일 수가 없다.

잘 시간이라고 억지로 이불펴고 누운 늦은 시간에 무슨 고해성사라도 하듯...약간 쑥스러워 하며 하는 말이....'엄마....나 좋아하는 애 생겼어...' 하는거다.

- '그래....? 누구..........?'

'권OO'

-'걔가 누군데?'

'우리반 애야...엄마두 얼굴 보면 알껄?'

-'모르겠는데....? 이뻐? 왜 좋아?'

'처음엔 안이뻤는데....요즘은 자꾸 이쁘게 보여. 수업하다가 선생님이 공부시키면...빨리 해놓고 걔 쳐다본다'

-'그렇게 좋아?? 착해?'

'응....다른 애들은 남자애들이 괴롭히면 소리지르면서 성질부리는데....걔는 한번 째려보고 말더라....착하지?...........째려보는 것도 나쁜거야?'

-'아~~~~냐....화가 나면 그 정도는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거지....'

'엄마....나 걔가 너무 좋다'

뭐 대략 첫날은 이 정도의 대화가 오간뒤 잠이 들었는데....그 다음날도...그 다음날도...잠들지 않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내내 그 얼굴도 모르는 아이가 우리 둘의 대화주제가 된거다.

'엄마...나...걔 생일 물어봤더니 4월달인데...정확히 모른대..'

'엄마...나 걔네집 앞에까지 가봤다...유치원 끝나면 집에서 자전거 타고 걔네집까지 갔다 와'

'놀러간다고 했는데....평일은 안되고 일요일날 오래...엄마 나 일요일에 걔네집 놀러갈꺼야'

-'가면...인사 잘 하고 말 이쁘게 하고...예의바르게 해야 돼...어른들껜 드나들때 인사 잘 하는 거 있지 마'

'그럼...당연하지....나 크면 걔랑 결혼할껀데....걔네집 가면 인사 잘 할꺼야'

-'........???'

'걔랑 결혼해두 되지?'

-'그래라.....'

오늘 얘기로는....매일 붙어다니는 제일 친한 친구한테 그 아일 좋아한다고 얘기했는데 ...자기보다 친구가 그 여자아이 집에 자꾸 가자고 한댄다. 아무래도 친구도 그 아일 좋아하는 모양이란다.

라이벌까지 생겼다.

급기야....오늘 아침엔 유치원엘 매일 같이 가는 그 친구와 안가고 혼자 간다며 집을 나서는 걸 붙잡아 놓고 꼭 같이 가라고 당부해야 했다.

그 첫사랑의 힘은 생각보다 정말 대단해서, 평소 질색하던 젤을 머리에 발라줘도 고분고분 가만히 있고 아빠가 사주신 헐렁한 신발도 멋지다고 치켜세우자 거부반응 없이 잘 신고 다니고 똘똘한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하면 아들녀석 손엔 영락없이 책이 들려있다.

먼 훗날....

지금 내 기억속에 떠오르는 유치원 때의 기억처럼 가물가물하고 혹시 생각조차 못하게 될 지 모르지만...지금 느낀 그 사랑의 감정들을 혹시 떠올리게 된다면....

나중에 진정한 사랑을 시작할 때엔 이 맘때쯤의 순수하고...아주 천진한 감정들을...꼭 기억해내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