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명절...추석
네버엔딩 스토리(한 여자 이야기) 2004/09/24 13:24   http://blog.azoomma.com/liebe980/160849

 남편은 슬쩍 오늘 가자고 하지만....저도 슬쩍 내일로 미뤘네요.

하루 먼저 간다고 무슨 큰 일을 더 하는 건 아니지만....미리 가서 더 늦게 온다는 자체가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며느리도 계실텐데...이런 말 하면서 투정부리는 제가 참 철없어 보이지만...저도 한때는 잠시 시할머님에 시부모님과 함께 산 적이 있어서...그 맘을 충분히(?) 헤아린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시할머님은 치매끼가 약간 있으셨어요..

성격 자체가 워낙 간섭하는 걸 좋아하시는데다...제가 시집가기 전까진 혼자 넓은 집에서 사셔서 외로움을 많이 타시고 가족들 성격이 다정다감한 분위기는 아니라서 아마 더 외로우셨던 것 같아요..

 시댁에 들어가자마자 입덧으로 누워만 있고 싶어졌지만 남편이 없을 땐...한번도...정말 한번도....입덧으로 힘들다고 누워있어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남편도 그 당시엔 '가정'보다는 회사일이 우선이고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만나 술로 풀다보니....입덧하며 시집살이 하면서 남편 얼굴을 주말에 본 적은...제 기억엔 한 두번이었구요.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마땅찮고 친정에 전화해봐야 제 얼굴에 침뱉는 격이니 혼자 울음을 삼키고 무조건 참기만 했지요.

 그나마 친구들과 전화통화 하거나 만나는 게 제 숨통이었는데...외로운 시할머님은 제가 친구들과 통화하거나 외출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고...오는 전화마다 방에서 따로 전화내용을 들이시며 참견하시거나 욕을 하시며 끊게 만들고...아니면 아예 '없다'며 말도 못붙이게 막으셨죠.

 

 시댁 어른들께선 매몰차거나 인간성이 나쁘거나...하신 건 아닌데...참 선하신 분들이면서도, 다른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해주시는 건 부족했고 그 점이 제일 힘들었어요.

 남자였으면 대성하셨을 시어머님 성격은 시아버님을 항상 쥐락펴락 하셨고 그 그늘에서 시아버님이 찾으신 해결책은.....항상 술에 의존하시는 거였구요.

 

 시할머님은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셨는데...당뇨가 있으셔서 냄새 또한 심했고 바로 빨래를 하지 않으면 온 집안에 냄새로 진동을 하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이불을 나중에 빨더라도.....밖에서 고생하신 시부모님은 제게 그 불똥이 떨어져 '하루종일 놀면서 뭘 했느냐?'  '밥만 X먹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느냐?' '너두 애 낳고 얼른 돈 벌어야지...남편 혼자 고생하게 하느냐..'는 어찌보면 그 입장에선 최대한 솔직(?)한 말을 수없이 들으며...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분가하고 낳은 아이는...예민하기 이를 데가 없었어요.

분가도...참 시끌벅적한 일을 겪고 이루어진 건데...

 

 결혼하고 남편의 첫생일을 맞은 제 친정엄마가...사위 첫생일은 장모가 챙겨주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부쳐준다고 전화를 해온게 화근이었거든요.

 시할머님은...다른 방서 제게 걸려온 전화의 발신인이 누구인지 확인도 안하시고 '어느 X이 또 불러내는 지 들어보자..'고 시작하신 말씀이 제 엄마라는 걸 확인하고는 오히려 '시집간 딸X한테 전화해서 무슨 작당을 하려느냐...시집갔으면 그걸로 끝이지..왜 전화질은 해서 XX이냐....'며 걸쭉한 욕설을 평소처럼 쏟아내셨는데....

 

 그 날은 날도 날인지라...평소같으면 '할머니...엄마가 이러저러해서 전화한 거고..전 안나가니까 그냥 그쪽 방에선 끊어주세요..' 하겠지만...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전화로 하염없이 울고 있으려니...엄마는...'에휴..참...내가 미안하다..'며 우시더라구요.

 

 그래도 젊은 날에 워낙 큰 일들을 많이 겪은 엄마여서인지...전화를 끊었다가 좀 지난 후 다시 전화해서 할머님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다신 전화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한 후...전화용건을 설명하시고는....그 담에 절 바꿔달라고 하니 순순히 바꿔주시더군요.

 

 '이것아....니가 울면, 엄마 눈엔 피눈물이 흐르니...절대 울지 마라...'는 말에...전 통곡을 했고....그나마 할머님께선 '참 선하고 좋은 양반이네..'라는 좋은 평을 처음 들으신 게 마지막으로....시댁으로 다신 전화를 하지 않았죠.

 

 그때만해도...시할머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저는...그 전화를 끊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해 울며불며 이러저러한 말들을 쏟아내고, 그게 시부모님께도 알려져서...그 여파를 불안해하시던 시할머님은....'내가 나갈테니..넌 시할미 쫓아내고 맘 편히 살아라' 하시더군요.(지금 생각하면...제일 후회되는 점이예요....)

 

 시집살이를 하며 좋은 점은....제 어린 시절을....아빠 엄마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커서인지...결혼 후...비록 시댁어른들이지만...'아빠 엄마'라는 호칭으로 말씀해주시는 게 너무 좋았어요.

 

 시어머님께선 전화로 '그래..엄마다....'로 시작하시고 용건을 말씀하셨고 시아버님도 내내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셨지만...은근히 내비치는 마음씀씀이를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분가하고 8개월 후...시할머님은  돌아가셨고...

몇 년이 흐른 지금은...떠올려보면...그 때...그 잔소리나 간섭을 지금 들었다면...어찌 보면..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텐데...하는 후회가 들어요.

 

 멋모르고 결혼해서 자청한 시집살이를....매섭다면 매섭게 겪었지만...명절땐 가족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여야 돌아오며 '추석이었네...'하는 생각이 들고, 부침만 한 광주리가 나와야 '음식이 좀 준비되었네...'하며 안심이 되며, 빠짐없이 친척들이 찾아와야 기분이 덜 찜찜하고 혹시라도 고모님들 얼굴을 못뵈면 '혹시...섭섭하신 거 있나....'하는 걱정이 되거든요.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거꾸로 생각하면...골이 깊으니..산이 높듯이....

참...할 말 많은 시집살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배울 것도, 느낀 것도 많고...남편을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살림 익히는데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거든요.

 

 그래도...명절 그 자체로 풍성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행복한 명절 되세요~~~~~~~~~~

 

*** 남편...

 

 혹시 이 글을 읽고 섭섭한 마음이 들지도 몰라..

하지만..어느 집이나 문제가 하나 쯤은 있는거고...이 집만 특별히 이상하다...이런 건 아닌 것 같아...

 당신도 우리집 분위기가 이해안되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처가집이라고 그나마 내가 갈 데가 거기니까...내 마음의 안식처...라는 방향으로 이해줬으면 좋겠어.

 

 난 참 힘들게 기억되는 부분도, 당신은 당신이 자란 집이니 특별한 게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부분이 있듯이...나 또한 똑같은 맘이잖아...

 

사람 맘...거기서 거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