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3살적에...그니까 딱 지금의 제 딸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헤헤 웃기만 하던...그리고 기저귀 떼느라 하루에도 몇 장의 속바지를 지리며, 고작 세상에 대해 아는 건 단어 몇 개던 시절에 말이예요.
제 아빠는 절친한 친구에게 빚보증을 잘못서 전 재산을 날리고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딸 둘과 젊디젊은 마누라를 남기고 돌아가셨지요.
전...그래서 '아빠'라는 이름은 한번두 불러보지 못하고 그렇게 커서인지...
결혼하고 시아버님이, 눈치없이 며느리 자는 방을 벌컥벌컥 열어제껴두...입덧으로 기진맥진 해 있는 며느리에게 까스활명수를 내밀며 '이거 먹으면 속이 괜찮다...'하셔두...하루종일 일하시고 손톱밑이 때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족발을 덜컥 집어주셔두...빨래 너는 것부터 설거지 담는 통에 그릇 넣는 것까지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저 맘편하고 만만한 제 아빠 대타였습니다.
시어머님껜 감히 무서워 아무 말대꾸도 못하다가, 술을 좋아하시는 시아버님껜 저도 주저리 주저리 잔소리를 늘여놓으며 술잔도 기울이는 술친구이자 말동무가 되어드리려고 노력했고...늘 외로움을 타시는 시아버님이 안타까워 평소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남편에게 부탁해 가끔 술자리도 함께 하게 되었지요.
그런 아버님이...얼마 전부터 허리가 불편하신지 시중에 판매되는 디스크방지용 복대를 하시더니...며칠 전부턴 종아리가 끊어질 듯 아프시다며 걸음걸이를 잘 못하시고 차려드린 진지도 제대로 못드시는 겁니다.
부랴부랴 어머님이 잘본다는 한의원이며 침놓는 데를 모시고 다니시고 오늘은 병원에 가셨다지만...
어느 한의사는 궁금해하는 가족들의 전화공세에 '술이 너무 과하셔 아마 조만간 풍이 올 것 같으니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라'는 진단을 내리더군요.
전 제가 건 전화지만...그 전화를 잡고 너무 속상해 울고만 싶었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눈물을 보여 어머님께선 '넌 장사는 못하겠다'고 제 주책스런 눈물탓을 하시지만....
며느리가 아버님께 눈물로 읍소를 드리면...그 고집을 꺾을 수 있을까요.....?
평생을 함께하신 어머님조차 두손 두발을 들게 하신 그 고집을 무슨 말로 꺾을 수 있을까요......?
저희집에서 당분간 모시겠다는 말도 '내가 너희집에서 신세질만큼 아프지도 않지만 이제 막 이사한 집에 아픈 몸으로 가지도 않는다!!'며 정색을 하시고, 눈에 넣어도 안아플 손주의 협박(?)에도 그 고집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제발 제 말좀 들어주세요.
어머님도 그렇게 강한 척 하시지만, 아버님 편찮으시다는 말에 옷도 제대로 못추스리시고 같이 병원에 가시잖아요...
이번엔 의사가 그만오라고 할 때까지 병원좀 꾸준히 다니시고 그 술좀 끊으세요...
제발 제 곁에...제 아버님으로..제 아빠로 오래오래 남아주세요...부탁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