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6살 먹은 우리 아들녀석 낳던 날도 내 추억거리의 한토막인데....
그 땐 시집살이에서 독립해서 내 생애의 광복절을 맞이한 지 불과 열흘정도 지난 지라 살림도 제대로 정리가 안된 14평된 작은 아파트에서 이미 남산만해진 배를 안고 뒤뚱뒤뚱 이미 일주일째 온 가진통과 싸움을 하고 있던 날.... 이슬도 보이고, 말이 가진통이지 5분간격으로 일주일을 치르고 나니 빨리 뱃속의 이물질(?)을 빨리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날 새벽이었다.
어째 같은 진통이지만 심상찮다 싶어 얼른 병원을 찾았더니 자궁문이 더 벌어져야 하지만 입원수속을 밟아야 한다며 수속절차를 알려주는데....
1인실밖에 없는 상황에 9만원씩 내면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아이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결론에, 병원 접수창구에서 집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병원에선 입원수속만 마치고 누워있어야 할 산모가 증발을 해놔서인지, 그 날 자정을 5분 넘기고 산부인과로 가니 이미 다들 내 존재(?)를 알고 있었고 덕분에 견딜만 한 진통에도 불구하고 1층서부터 직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곧바로 분만실로 가 진행상황을 체크하는 간호사들한테 둘러싸여 있어야만 했다.
이미 진통시에 나올 비명을 최대한 교양있게 하리라고 연습까지 마친 나였기 때문에 촉진제를 맞을 때까지만 해도 여유있게 그럭저럭 참을 만 했었는데....
촉진제를 맞고도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안하는 뱃속의 아이때문에 이미 15시간가량을 진통으로 버틴 나는 간간히 정신을 잃고 담당의사가 닭꼬치 꿰는 용도의 긴 꼬치(?)로 양수를 터뜨리고 내 벗은 하의를 흰가운 입은 의사들이 둘러앉아 수시로 손을 넣어보는 가운데 슬슬 진통과 맞먹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남편과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수술에 동의하지 말라'는 합의가 있어서 수술을 해야겠다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잠깐 망설였나보지만 환자를 보고 서명하라는 말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기진맥진해 있는 날 본 후 마음이 약해진 남편은 얼른 서명을 해버렸나 보다.
18시간 조금 넘는 진통을 겪고 지금의 아들내미는 세상을 볼 수 있었고 다시 예전의 여유를 찾아 회복을 하던 즈음....
회진을 돌던 의사선생님이 무수히 그 뒤를 쫓는 인턴들을 거느리고 내 앞에 서더니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하는 말.
'이 환자는 특별한 환자입니다'
'...............??'
'이 환자는 수술할 때 제가 아주 힘들게 신경을 쓴 환자입니다'
'아....네......??'
'남편분들께선 보통 수술이 결정되면 환자 건강을 염려하는 말을 당부하는데.....
이 환자 남편분께선 상처가 얼마나 나냐며 크기를 당부해서요...
제가 아주 예~~쁘고 작게 수술해드렸습니다....요만큼 찢고 아기를 꺼내느라 아주 힘들었습니다' 하며 손짓까지 해보이시는 것이다.
주위는 순간 웃음바다가 되고 같이 있던 산모들도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지만.....
덕분에 나는 지금도 내 친구들과 비교하면 아주 '이쁘고 작은' 수술부위를 갖고 있다.
** 지금에 와서야 남편에게 고백하지만....면회시간에 다른 산모들처럼 남편을 곁에 두지 않고 빨리 나가달라고 한 이유가......내 아파하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제일 큰 이유이고....
두번째는....진통을 겪으며 힘을 주다주다 그만..........큰 실례를 범했기 때문이었어.
(그래도 그렇게 나온 아이는 똑똑하다더라.....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