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성희 기자]춘천으로 가는 길은 언제가 흥겹다. 경춘국도를 따라서 달려나가니 옛날 대학시절 MT 가는 기분이 들어 마음부터 들뜬다. 46번 경춘국도에는 유난히 놀러갈 곳이 많다. 청평, 가평, 강촌 등도 있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좀 낯선 이름의 '중도'이다.
이미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와 친구들에게는 낯선 곳이다. 아니 나는 불과 3주 전에 이미 친구가족들과 한 번 들렀던 곳이니까 낯설지는 않다. 저번에 왔을 때 너무 좋았길래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당장 같이 가자고 해서 이렇게 또 오게 된 것이다.
경춘국도에서 강촌도 지나고 의암터널도 지나서 춘천 시내에 거의 다 가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의암댐 가는 팻말에서 좌회전을 하고, 10분도 채 못가면 두산리조트 가는 팻말에서 우회전을 한다. 그리고 또 10분도 채 못가면 두산리조트가 나오는데, 거기서 바로 100미터 정도 더 가면 중도 선착장이 왼쪽에 나온다.
차는 오른쪽의 주차장에 넣고(하루 2000원), 내려서 배를 타면 5분도 못되어 중도에 도착한다. 중도 유원지는 원칙적으로 차를 못가지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유원지 반대편에 마을이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배를 타면 차를 가져올 수는 있단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매점과 식당 등이 같이 있는 사무실건물이 있다. 유원지 내부의 방갈로를 미리 예약했다면 이 사무실에서 열쇠를 받는다. 마을쪽에 민박집도 있지만 나는 이 방갈로를 적극 추천한다. 통나무 방갈로는 독립된 원룸형의 집이고 내부에 취사시설과 화장실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가족 단위로 놀러와서 묵기에 아주 좋다. 게다가 강가쪽의 방갈로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경치를 볼 수 있어서 환상적이다.
먼저 예약한 방갈로로 가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곧장 달려나와서 자전거를 빌렸다. 중도에서 제일 신나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따라서 난 길을 쭈욱 돌아보는 것이다. 가을빛이 완연히 물든 호수를 끼고 약간 울퉁불퉁하지만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달리는 기분은 가슴을 뻥 시원하게 만든다.
약 2Km가 넘은 호숫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잔잔한 갈대군락도 보고, 낙엽을 다 떨군 나무들도 만난다. 속도를 늦추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가을 분위기에 흠뻑 젖어본다. 물에 비친 나무와 산이 온통 갈색이라서 물빛조차 가을빛에 물든다.
호숫가에는 강태공들이 느긋하게 세월을 낚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들의 여유로움조차 이 경치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가을에는 느림과 여유로움이 어울린다. 결실의 계절이라서 마음이 풍족해서 그런가? 아니면 쓸쓸한 만큼 치열함이 덜해져서 그런가?
호수에서의 산책이 끝나고 나서 더 돌아볼까 하다가 저녁부터 먹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까 방갈로 옆에 작은 간이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오늘은 작은 행사로 통기타 음악회도 하고 영화도 보여준단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한 행사같다. 무대 앞쪽에는 사람들이 추울까봐 드럼통에 모닥불도 지펴 놓았고 작은 화로도 몇 개 보인다.
우선 숙소로 들어와서 따뜻한 방에서 몸을 녹였다. 확실히 도시와는 달리 쌀쌀한 바람이 제법 겨울티를 내려고 한다. 저녁을 방 안에서 먹고 나서 음악회를 한다는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왔다. 늦가을, 초겨울의 밤하늘 아래서 기타소리에 맞춘 노래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다. 작은 화로에 둘러앉아 손을 쬐다가 문득 가져온 고구마와 감자가 생각나서 숙소로 달려갔다.
사실 저번에 왔을 때는 나무 한 리어카(3만원)를 사서 모닥불을 피우고 거기에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때 나는 두툼하게 썬 삼겹살을 호일에 싸서 구워 먹어 봐야지 하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같이 온 친구들이 너무 춥다고 방 안에서 먹자고 해서 삼겹살만 후라이팬에 구워 먹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아쉬운 마음을 어찌 알고 이런 행사와 모닥불까지 피워준 것인지…. 흐뭇하다.
고구마와 감자를 호일에 싸서 화로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남은 삼겹살도 가져 와서 호일에 싸서 같이 던져넣었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환상적인 맛이다. 우리끼리 먹기엔 어차피 너무 많은 양이라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으면서 노래도 듣고, 아이들의 즉석 장기자랑도 구경하고, 이어진 영화도 감상하면서 그렇게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 전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이번엔 섬 안쪽길을 중심으로 돌았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곳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뛰어다녔다. 낙엽이 쌓인 곳의 아래쪽에는 푸릇푸릇한 풀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낙엽의 감촉이 너무 좋다. 낙엽을 서로 뿌리면서 뛰어 다니니까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다.
돌아와 아침을 먹고 다시 나와 이번엔 오솔길로만 골라 다녔다. 예쁜 나무들 아래서 사진도 찍고, 울퉁불퉁한 길을 속도 내어 달려보기도 하고, 고운 색의 낙엽을 골라보기도 하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날씨가 풀려서 밖에서 다니기에 한결 좋았다. 책을 한 권 가져와서 볕이 따뜻한 벤치에 앉아서 읽으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졸리면 졸고…. 그러다가 지루하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니고….
여기엔 곳곳에 벤치가 있어서 노닥거리면서 돌아다니기에 아주 좋게 되어 있다. 낙엽이 푹신한 곳이 있는가 하면 소나무가 늘씬하게 뻗은 길도 있고, 은행잎이 소복히 쌓인 곳이 있기도 하여 가지각색의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실컷 놀다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나오면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아침 배가 들어오는데 내리는 사람들 속엔 일본인 관광객이 무척 많다. 참, 이곳은 겨울연가를 촬영한 곳이라서 입구에서부터 일본어가 쓰여진 겨울연가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 머나먼 중도까지 찾아온 관광객을 보면서 새삼 한류열풍이 세긴 세다는 생각을 했다.
뱃전에서 멀어져 가는 중도를 바라보면서 참 잘 쉬다가 간다는 생각을 했다. 톱니바퀴처럼 쉴새 없이 돌아가는 생활에서 빠져나와 모처럼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나는 듯이 가볍다.
/김성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