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장산，그리고 晩秋] 늦가을 단풍에 취했나 발그레한 속살 보였네 |
내장산 단풍은 차라리 횃불이다.
그날의 함성처럼 꽃봉오리를 닮은 아홉 봉우리에서 단풍이 활활 타오르더니 어느새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물든다.
그리고 시샘하듯 찬비가 한차례 단풍나무숲을 휩쓸고 지나자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가던 단풍이 하나 둘 낙엽 되어 능선을 뒹군다.
남도 들녘을 핏빛으로 적시고 스러진 동학농민군처럼?.만추의 내장산은 단풍의 화려함과 낙엽의 쓸쓸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내장산은 주봉인 신선봉(763m)을 중심으로 장군봉 연자봉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영봉 등 고만고만한 높이의 아홉 봉우리가 마치 꽃잎 하나 떨어진 꽃봉오리처럼 형상인데다 어느 골짜기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1∼2시간이면 정상을 밟을 만큼 산세가 부드럽다.
산도 높지 않고 골도 깊지 않건만 내장산은 꽃봉오리를 닮은 산속에 무엇을 숨겨 놓았기에 ‘내장(內藏)’이란 이름을 얻었을까.이른 아침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내장저수지에서 단풍나무 가로수에 붉게 물든 봉룡천을 거슬러 오르면 내장산이 꼭꼭 숨겨 놓은 속살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내장산의 속살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비경은 ‘춘백양 추내장’이란 말마따나 가을 단풍이 빚어내는 파스텔 톤의 색이다.
아기단풍과 굴참나무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활엽수로 단장한 내장산은 설악산만큼 현란하지 않고 지리산만큼 장엄하지는 않지만 시골 아낙처럼 수수한 자태로 산행객의 혼을 빼앗는다.
내장산은 정상에 오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가을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넉넉한 심성의 소유자다.
단풍나무 가로수 길의 끝에서 만나는 우화정은 내장산이 숨겨둔 절경. 거울처럼 맑은 호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정자와 연자봉 중턱의 전망대,그리고 단풍나무 숲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는 케이블카가 데칼코마니 기법의 풍경화를 펼쳐놓은 듯 황홀하다.
내장사 입구의 단풍터널은 내장산의 간판얼굴. 단풍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빛의 잔치를 펼치는 약 400m 길이의 단풍터널을 걷다보면 심신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든다.
일주문∼벽련암∼원적암∼내장사∼단풍터널∼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약 3.6㎞의 원적골자연관찰로는 산책을 겸해 내장산의 속살을 감상하는 코스. 벽련암에 오르기 전에 만나는 서래봉 자락의 백년약수에서 약수 한 모금을 떠 마시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인다.
낙엽이 꽃비되어 흩날리는 오솔길을 걷다가 만나는 벽련암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발걸음조차 조심스럽게 한다.
내장산 단풍처럼 화려한 단청으로 단장한 벽련선원은 대숲 너머 서래봉과 맞은편 연자봉의 중턱에 걸터앉은 팔각정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 벽련선원의 평상에 누워 고개를 젖히고 거꾸로 보는 서래봉 바위절벽의 장엄한 풍경은 가을 내장산이 꼭꼭 숨겨놓은 최고의 절경.원적암 남쪽 산기슭에는 수령 750년의 비자나무와 감나무들이 서로 키 자랑을 하고 있고 노승이 낙엽을 쓸어내는 대빗자루 소리에 놀란 붉은 홍시는 까치밥이 되기도 전에 툭툭 떨어진다.
비자림에서 내장사까지 이어지는 1.2㎞의 원적계곡은 낙엽 밟는 재미가 한껏 묻어난다.
어깨를 나란히 한 노부부가 단풍나무 틈새로 쏟아지는 오후의 따스한 햇살과 낙엽비를 맞으며 걷는 풍경이 빛바랜 사진처럼 정겹다.
원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내장산 능선의 우아한 곡선을 감상하려면 추령의 단풍고개에 서야 한다.
매표소에서 49번 지방도를 타고 깎아지른 산허리에 위태롭게 걸린 구절양장의 추령교를 건너면 단풍고개의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단풍고개에서 만나는 내장산의 핏빛 단풍과 낙엽은 왠지 서럽다.
지아비를 기다리다 망부석으로 변한 정읍사(井邑詞)의 백제여인 탓일까,아니면 정읍이 갑오농민혁명의 진원지이기 때문일까. 떠나보내는 가을의 서러움이 커피향보다 진한 것도 내장산의 매력이리라.정읍=글·사진 박강섭기자 kspark@kmib.co.kr◇ 여행메모내장산 단풍은 단풍터널이 붉게 물드는 이번 주말이 최고의 절정기다.
호남고속도로 내장산IC에서 정읍 방향으로 달리다 내장저수지에서 우회전하면 내장산이다.
주말엔 막바지 단풍을 즐기려는 산행객들이 내장산 진입로는 주차장이 되기 십상이므로 정읍시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서래봉 매표소 인근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산책을 겸해 걷는게 편하다(국립공원 내장산사무소 063-538-7875).내장저수지에서 정읍시내 방향에 위치한 갈비나라(063-535-1209)는 한우찜갈비가 맛있다.
내장산저수지 인근의 서래원(063-536-3377)은 참게낚지매운탕이 별미. 서래원에서 운영하는 모텔도 깨끗한 편이다.
비타민여행사(02-736-9111)는 무박2일로 떠나는 내장산단풍열차를 운행한다.
오후 11시50분에 서울역을 출발해 이튿날 내장산 까치봉을 산행한 후 젓갈로 유명한 부안 곰소항도 찾는다.
요금은 5만4000원으로 6일 출발. 고속열차를 타고 가는 내장산단풍열차 상품은 5만5000∼6만1000원. 당일상품으로 7일까지 매일 출발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