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뱀
햇살 좋은 봄 날
운동겸 산길을 걸어 다녔었다.
뱀이 나올 계절이 되어서
온 신경과 눈은 땅을 향해 있었고
길을 나설 때 하는 기도
(뱀만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어느 지점에서
내 앞을 스~~~~윽 지나서
풀 속으로 숨는 뱀을 보고
놀래서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든 생각
뱀이 참 가여웠다
뱀이 내게 무슨 짓을 했다고
나 스스로 놀라서 이 야단인지
뱀이 나를 먼저 보고
나보다 더 놀라서 풀 속으로 숨는데
나는 어찌하여
뱀을 이다지도 무서워하는지
뱀은 사람이 먼저 공격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데
길에서 긴 것만 봐도 놀라서 펄쩍펄쩍 뛰는지
앞으로는
억울한 뱀의 입장에서
뱀을 생각해 주면서 걸어야 겠다.
말도 못하고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
생긴 것이 혐오스럽다고
무조건 미워하고 무서워하고...
생긴 것이 내 죄인가요?
제발 나를 보고 놀라지 마세요.
(뱀이 이렇게 말 하는 듯 하다)
금전화 냄새를 뱀이 싫어 한다해서 엄청 많이 심었었는데...금전화 속에도 뱀이 있었다는...해서 지금은 안 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