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페이지 넘겨서 씁니다
내 뼈마디 어디쯤에도 단단히 얼음이 박혀 있을거예요.
그것을 해빙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당신에 대한 그리움만이 내가 잿더미 같은 시간 속에 묻어둔 소중한 불씨였습니다. 설령 그마져 끊어버리지 못한 집착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그 보잘것없는 온기의 망집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늘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혼곤하고 고단한 꿈길이었습니다. 나는 허위허위 무릎을 짚어가며 그 길을 따라 걸었지요.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마냥 산중을 헤매고 있었지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홀로 걷는 산길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둠 속에서 나를 고즈넉이 바라보는 조금 부은 듯 나른한 부처의 눈길이 느껴졌습니다.
시무외, 시무외인! 두려워하지 마라!
여원, 여원인!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한 길을 넘치는 광배의 화염문을 일렁이며 돌부처가 내게 미어 같은 말을 속삭였습니다.
헤어진 정인을 만나게 해주세요!
나는 그 차갑고 단단한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애원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살아 만나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만나게 해주세요! 그의 옆에 나를 위한 자리를 비워주셔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러지리라 믿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않고 꿈꾸면 마침내 그 꿈이 현실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집착이나마 놓지 않고 악착같이 매달리면, 망집이나마 이악스레 부여잡으면, 죽음마저도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을 수 없을 거라고. 그리하여 매양 꿈길에서 만나는 죽음은 황홀하고 달콤한 매혹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정말 나는 살아있기나 했던 걸까요? 다만 살아있는 꿈에 시달렸던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