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청담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청담스님께서 직접 보고 들은 체험담이지요. 청담스님께서 30대 중반에 봄과 가을마다 설악산 봉정암에서 수행하실 때였습니다. 겨울에는 봉정암에 눈이 너무 내리기도 하고 식량도 떨어지게 되니 늦가을이 되면 봉정암 스님들은 반드시 암자를 내려와야 했다고 합니다.
그해에도 청담스님은 유수스님과 함께 늦가을이 되어 대청봉을 넘어 산길도 없는 오색약수터를 넘어 낙산사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청담스님은 비탈진 산기슭을 내려오다가 그만 넘어져 손목을 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낙산사로 바로 가지 못하고 산골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산골 마을에 들어 어떤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마을에 침을 놓을 줄 아는 분이 있습니까?”
“왜 그러시오.”
청담스님이 삔 손목을 보여주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침을 놓을 줄 알지만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저기 이장 집이 있으니 같이 가봅시다.”
청담스님은 노인을 따라 이장 집으로 갔습니다. 청담스님은 이장에게 인사를 하고 마루에 앉아 노인에게 침을 맞았습니다. 노인이 침을 다 놓고 나서 물었습니다.
“스님들은 어느 절에 계신 분들입니까?”
“설악산 봉정암에 살다가 겨울에는 살 수 없어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산길도 없는 약수터 쪽으로 오다가 미끄러져 손목을 다쳤습니다.”
노인은 물끄러미 젊은 청담스님과 유수스님을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내 눈에는 진짜 공부하는 스님들로 보입니다. 고생이 많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봉정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그 사이 이장이 떡과 술과 안주를 내왔습니다. 스님들은 떡만 먹고 노인은 술 한잔에 안주를 씹더니 봉정암에 얽힌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았습니다.
몇 해 전의 일이었다. 봉정암에는 어디서 온지 모르는 아무런 행동이나 거침없이 하는 스님이 살았다. 술도 먹고 여자도 보고 법당에 예불도 하지 않는 속인이나 다름없는 스님이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 마을로 탁발을 와서 곡물이 거둬지면 저 윗집에 혼자 사는 과부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스님과 과부가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때 우리 마을에 심마니가 살았지요. 마침 그 심마니는 봉정암에 산신기도를 하려고 올라갔습니다.”
실제로 심마니는 봉정암에서 산삼을 캐게 해달라고 산신에게 며칠 동안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봉정암 스님이 오랜만에 올라왔다. 심마니와 스님은 오랜만에 만나 밤늦도록 이야기하다가 한방을 둘로 나눈 아랫방 윗방에서 잠을 잤다.
새벽이 되었다. 갑자기 아랫방에서 자던 스님이 일어나 “에이 재수 없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심마니가 놀라 깨어나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투덜거렸다.
“한참 맛있게 잠을 자는데 어떤 영감이 나타나 야단을 치지 뭐요.”
스님의 얘기는 사실이었다. 수염이 허연 영감이 꿈속에 나타나 ‘네가 그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내 식구를 보내어 너를 혼내주겠다’고 야단을 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심마니는 다시 잠을 청하면서 노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심마니도 스님의 못된 행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마니는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누웠다.
“참회는 못할망정 고약한지고.”
그런데 또 얼마 지나자 아랫방 문이 뜯겨지는 소리가 와장창 들렸다. 심마니는 또 놀라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랫방에서 자던 스님은 보이지 않고 호랑이 울음소리가 으르렁 으르렁 산골짜기를 울리고 있었다. 무서워 바로 나가지 못하고 주위가 잠잠해졌을 때에야 나가보니 스님은 온데 간데 없고 암자 마당에는 사람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날이 밝은 후에야 심마니는 서둘러 오세암으로 내려갔다. 오세암에 다 와서 숨을 고르는데, 심마니는 또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말았다. 스님의 찢겨진 시신이 큰바위 밑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님만 화를 당한 게 아니었다. 과부도 베틀에 앉아 삼을 잣다가 문을 뜯고 내민 호랑이 앞발에 머리를 한 움큼 뽑히어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문이 꼭 잠기어 몸이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아 목숨만은 건졌던 것이다.
“스님들께서 수행을 잘 하시는 것 같아 봉정암이 보통 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어 제가 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봉정암을 지키는 호랑이군요.”
“그렇습니다. 스님들께서는 부디 나라를 구하신 서산, 사명 같은 큰스님이 되십시오.”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침을 놓은 값을 받지 않고 마을을 먼저 내려갔다고 합니다.
겨울이 지나 청담스님과 유수스님은 다시 봉정암으로 올라가 참혹하게 죽은 스님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주고 그해 여름은 봉정암에서 나지 않고 묘향산 선령대로 갔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