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고구려 25대 평원왕(平原王=559~590) 때 온달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난하고 무식 하였지만 마음씨 착하고 효심(孝心)이 지극해서
홀어머니를 걸식(乞食)으로 봉양하며 살고 있었다.
그때 평원왕의 평강공주가 있었는데 어려서 몹시 울어서 부왕이 자꾸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농담을 하곤 하였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부왕이 귀족인 고씨 집에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어찌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시 옵니까? 저는 평소의 부왕(父王) 말씀대로
바보온달에게 시집가겠노라고 우겼다.
부왕은 노하여 공주를 궁궐에서 내쫒자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결혼을 했다.
공주는 자기가 궁궐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패물로 의식을 해결하고
왕실의 병약한 국마(國馬)를 사오게 하여 잘 길러 준마(駿馬)를 만들고
온달에게는 무예와 학문을 닦게 하였다.
고구려는 매년 봄 3월 3일에 낙랑의 언덕에서 무술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온달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이 소식이 왕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중국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쳐들어오자 온달이 선봉이 되어 큰 공을 세웠다.
그때 왕이 크게 기뻐하며 온달을 사위로 인정하고
그에게 대형(大兄)(고구려의 관등.官等)의 벼슬이 내려진다.
그 후 영양왕(瓔陽王)이 즉위(卽位) 하자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출전했다가 아차산성(阿且山城)~
(서울 광진구 광장동과 구의동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山城)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례식을 치르려 하니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生死)가 이미 결정 되었으니 한을 풀라 하자
비로서 관이 움직여 장사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참조~다음백과
온달은 고구려의 장군이다.
살림이 구차하여 구걸로 어머니를 봉양했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다녔기 때문에 바보 온달로 불리었다.
단양군 영춘면에 온달산성이 있는데 온달장군이 이곳에서 전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버리고 학문과 무예(武藝)를 가르쳐 국가에 큰 도움을 준
평강공주의 내조정신은 모든 여성들이 본받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