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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2006/06/08 20:24   http://blog.azoomma.com/juhyun/226152

# 순풍 프로젝트

순산 위해 태교.요가.수영…아내는 어느새 '강철 여인'

다행히 아내는 입덧이 없었다. 입덧도 유전인지 모르겠지만, 장모님도 입덧이 없었단다. 임신 20주에 들어서자 아내는 평온을 되찾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내는 결연한 표정으로 '순풍 프로젝트' 돌입을 선언했다.

아내는 우선 인터넷의 한 임산부 카페에 가입했다. 이어 분유회사.병원.육아용품 업체 등에서 여는 육아교실을 찾아다녔다. 서울 명동.대방동.사당동 등을 거쳐 경기도 광명과 분당까지. 아내는 십여 차례나 육아교실에 참가했다. 강의내용도 솔깃했지만 선물이 쏠쏠했다. 분유.거즈.기저귀.책.CD.양말 등등, 보리 살림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아내는 육아용품 DIY 사이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보리 살림을 만들기도 했다. 슬링.기저귀 보관함.양말.모빌 등등, 설명서만 따라하면 되는 일이라 크게 어렵진 않았다. 동네 보건소에도 자주 들렀다. 거기서 아내는 산전체조.모유수유 등을 배웠고 각종 검사도 받았다. 이 모든 정보를 아내는 임산부 카페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아내는 강철여인으로도 변신했다. 구청 문화센터의 일반 요가교실에 석 달간 다니더니, 백화점 문화센터에선 임산부 요가를 따로 배웠다. 이어 올 3~4월엔 일주일에 세 번씩 임산부 수영교실에 나갔고, 막달엔 산책과 계단 오르기에 집중했다. 집에선 CD를 틀어놓고 임산부 체조를 따라했다. 월드컵 대표팀에 버금가는 체계적인 몸만들기였다.

덩달아 내 일상도 고단해졌다. 막달, 아내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고 아파트 22층을 올랐다. 구호는 물론 "순풍순풍"이었다. 주말마다 태교 동화를 읽고 자장가를 부르고 '라마즈 호흡법'이란 것도 따라했다. "흡흡하~ 흡흡하~."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유행이라는 만삭 사진도 찍어야 했다. "그딴 건 왜 찍느냐?" 저항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아내는 미리 무료 사진촬영권을 얻어 동네 사진관에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TV 시청권도 극히 제한됐다. WWE 프로레슬링이나 이종격투기 등은 엄격히 금지됐다. WWE 최대 이벤트 '레슬매니어'를 못 본 건 아직도 아쉽다.

# 5월 18일 01시 46분

예정일 3일 전 갑자기 진통이 … 실핏줄까지 터지는 분만의 순간

막달이 되자 아내는 잠을 못 이뤘다. 힘들어하는 게 역력했다. 어느 날 아내는 결혼반지를 빼놓았고, 신발장 구석에 구두를 들여놓았다. 손발이 붓기 시작한 것이다. 옷가지 그득한 여행용 트렁크가 거실로 나왔고, 수첩엔 콜택시 전화번호도 적어놓았다. 아내가 아랫배 움켜쥐고 인상 찡그리는 일도 부쩍 잦아졌다.

5월 17일 아내는 불안하다며 장모님을 불렀고, 오후 9시가 되자 아내는 10분꼴로 인상을 찡그렸다. 병원에 갈까도 했지만, 예정일보다 사흘이나 전이었다. 밤 11시 30분. 아내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돌아오더라도 가보자고 했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12시 30분. 아내를 검사한 간호사는 자궁이 5㎝ 열렸다며 바로 출산준비를 시작했다. 모든 게 갑자기 진행됐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 1시 15분. 분만실엔 힘겨워하는 아내와 아내 머리 곁의 나, 그리고 간호사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출산이 시작됐다. 아내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얼굴과 목, 등과 팔이 벌겋게 달궈졌다. 실핏줄이 터져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내의 등을 받쳐주는 것뿐이었다. 의사가 들어오고 간호사 숫자가 늘어났다. 그토록 연습했던 "흡흡하~"를 아내는 잊어 먹었다. 아내는 진땀을 쏟아냈고 나도 진땀이 쏟아졌다. 그리고….

보리가 나타났다. '나타났다'고 해야 맞다. 불쑥, 보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의사가 아내의 배 위에 보리를 올려놓자, 아내는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보리야! 보리야! 사랑해 보리야!" 당장 기절할 것 같던 아내였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도 아내는 답을 못 한다. 그 순간, 아내는 꼭 엄마 같았다. 아빠도 말 좀 하세요, 누군가 그랬던 것도 같다. 하나, 아무 말도 못 했다. 세상은 너무 흐릿했고 온통 흔들렸다. 간호사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가 끝나자 탯줄을 끊으라고 했다. 겨우 가위질을 마쳤다.

아침 7시 간호사가 보리를 안고 병실로 들어왔다. 이름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성별: 여, 신장: 52㎝, 체중: 3㎏, 출생 시각: 5월 18일 오전 1시 46분. 온몸을 꽁꽁 싸맨 보리는 자고 있었다. 세상 모든 평화를 머금은 얼굴이었다. 마냥 신기했다.

# 그리고 …

웃고, 울고, 눈 뜨고 … 날마다 기적
더 큰 기적 '엄마도 곧 부르겠지'


병원에 간 지 2시간도 안 돼 출산한 아내는 병원에서도 순산을 인정받았다. 아내는 운동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떻게든 젖을 더 먹이려고 궁리가 한창이다. 잠 못 자는 건 내외가 마찬가지지만 누구도 불평을 하진 않는다.

요즘 집에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난다. 웃고, 울고, 새근새근 잠자고, 두 눈을 뜨고, 거창하게 변을 지르고…. 고마운 건, 앞으로 더 많은 기적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곧 보리는 몸을 뒤집을 것이고, 두 발로 설 것이고, 걸음을 뗄 것이고, 마침내 '엄마'를 부를 것이다. 출산은 이제 막 일어난, 숱한 기적의 시작일 뿐이다.

33년 10개월의 남자와 32년 9개월의 여자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13개월 뒤,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오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별다른 사연도, 남모르는 아픔도 없는 평범한 출산 경험담이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이 평범한 이야기는 오늘 신문기사가 된다. '내 아이를 갖는 기쁨을 생각해 보라'는 공익광고까지 등장한 오늘이고, 일상의 부담에 치여 가장 평범한 가치마저도 외면한 우리네이기 때문이다. 결혼 노령화와 저출산은 우리네 삶이 얼마나 급급한가를 보여주는 징표다. 여기에 한 부부의 임신과 출산까지의 나날을, 남편의 목소리로 옮겨적는다. 남편의 이름은 손민호. 중앙일보 기자다. 남편에 따르면 출산은, 기적의 시작이다.


# 보리, 17.7mm

임신 6주에 지은 태명…동영상 CD 보고 가슴 찡

지난해 추석 직전. 아내는 며칠째 몸이 안 좋았다. 처음엔, 결혼하고 맞는 첫 명절 탓인가 싶었다. 감기 기운을 의심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의 손엔 임신 테스트기가 들려있었다. 보라색 두 줄이 선명했다. 임신이다. 그래도 일단 병원에서 확인하자며 호들갑을 경계했다.

명절을 쇠고난 직후. 인터뷰를 빙자해 시인 한 명과 낮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아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임신 6주래요." 그때 뭐라고 말했던가, 정확한 기억이 없다. 아마도 "별문제 없지?"였을 게다. 무언가 어색했고 영 서툴렀다.

통화 내용이 들렸는지 시인은 "좋은 소식 있나 보네"라며 말을 걸었다. 마침 잘됐다 싶어, 태명을 부탁했다. 태아에게도 이름을 부르는 게 좋다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터였다. 그러자 "보리 어때요, 보리. 부르기 쉽지, 성별 모르니 중성적인 게 좋지, 지혜란 뜻도 있어요"라고 권했다. 보리? 보리! 부를수록 입에 달라붙었다. 그날 이후 아기는 보리가 됐다.

두 주일쯤 뒤 아내는 인터넷 검색과 주위 추천 등을 종합해 몸을 풀 병원을 골랐고, 그 병원에서 첫 검사를 받았다. 뜻밖의 선물이 있었다. 초음파 검사 동영상을 CD에 저장해 준 것이다. 거기엔 17.7mm의 보리가 옹크리고 있었다. 쿠궁쿠궁쿠궁…, 힘찬 박동소리와 함께. 조금씩 꼬무락거리는 것도 같았다. 부모님께도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잃었고, 어머니는 "아이고, 세상에…"만 되풀이했다. 2분 갓 넘는 분량이었지만 그만큼 가슴 벅찬 영상은 여태 본 적이 없다. '보리의 모험'. 내가 지은 동영상 이름이다.

# 어느 날 되어버린 가장

하혈하던 아내 결국 사표…우울증 지켜보며 짠한 마음

10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저녁. 밥을 먹던 아내는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 뒤에 나온 아내는 하혈이 있었다고 했다. 깜짝 놀라 당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에겐 걱정 말라고 했지만, 핸들을 잡은 손엔 땀이 찼다. 병원에선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엄마가 많이 피곤한가 보네요." 덧붙였다. 그럴 만도 했다. 기성복 업체 디자이너인 아내는 연일 야근이었다. 날마다 밤 10시가 넘어야 들어오곤 했다. 연말에 있을 대형 패션쇼 준비 때문이었다.

아내는 우리 나이로 서른넷이었다. 은근히 노산(老産)이 걱정되고, 주변에선 종종 유산 소식이 들려오던 차였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내는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회사 그만둬야겠어요." 그저 묵묵히 등만 토닥여줬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게다. 출근길에 배 나온 여성을 만나면 뒤돌아보곤 했던 일이. 살다 보면, 나와 무관했던 세상이 어느 날 눈앞에 닥치는 경우가 있다. 임신부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많지 않다.

며칠째 아내는 잠만 잤다. 집 밖으론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말만 연방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아내는 눈물이 많아졌다. TV를 보다가도, 밥상머리 수다 중에도 뚝뚝, 눈물을 흘리곤 했다. 임신 우울증인가? 여하튼 예민해진 것만은 분명했다. 외식을 계획했고 휴가를 얻어 짧은 여행도 다녔다. 아내를 바라보면 늘 미안했고,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가장(家長)이란 걸, 알 것도 같았다.

손민호 기자

*** 보리 엄마가 전하는 임신.출산.육아 정보

■ 임산부 사이트

-네이버(www.naver.com) 카페 '임산부 모여라': 회원 수 16여만 명. 출산용품.육아교실 정보 총망라. 초보 예비엄마들의 시시콜콜한 고민까지 들어있음

-이외에 대형 포털사이트마다 임산부 카페가 운영 중임

■ 육아교실

-분유업체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아가 회원으로 등록하면 무료 샘플 주기도 함. 각 사이트에서 육아교실 정보 제공

-육아교실에 가면 분유.기저귀.사진촬영권.책.CD 등 각종 선물 받을 수 있어 참가자 넘쳐. 선착순이나 추첨으로 육아교실 참가 인원 제한

-이럴 때 임산부 카페가 유용함. 회원들이 서로 육아교실 정보를 공유함

-육아교실은 분유업체.병원.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개최. 아토피.제대혈.모유 수유 등 전문 정보 제공하는 육아교실도 있음

-주요 육아교실: 매일 우리아이 (www.urii.com) 남양분유(www.namyangi.com) 파스퇴르(www.pasteur.co.kr) 일동후디스(www.ildongfoodis.co.kr) 셀트리(www.celltree.co.kr) 등

■ 출산.육아용품 DIY 사이트

-기본 재단을 마친 상태의 재료 판매. 인터넷에서 제품 고른 뒤 재료 구매하면 집에서 설명서에 따라 만들 수 있음

-기저귀 보관함.슬링.아기 신발.모빌 등 100여 종. 품목별 재료 가격 1만~2만원대

-주요 사이트: 옹아리닷컴(www. ongari.com) 맘스그린힐(www.momsgreenhill.com) 등

■ 공짜 만삭 사진촬영권 받는 과정

-각종 육아교실.병원 등에서 사진촬영권을 경품으로 제공

-사진촬영권에 기재된 업체에 연락하면 집에서 가까운 사진관과 연결해 줌

-사진관에선 만삭 사진과 50일 사진을 찍어주고 신생아 사진 가져다주면, 사진관에서 사진 3장으로 책상용 앨범 만들어 줌

-사진관의 100일 사진이나 돌 사진용 마케팅

■ 특별 추천

-동네 보건소를 적극 활용할 것

-기초검사 받을 수 있고 철분제 등 선물도 줌. 모유수유.산전체조 교실 등을 운영하기도 함. 보건소마다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