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판에서
김 희 수
마을 한 바퀴 바람처럼 싸돌아도
옛 친구의 까만 얼굴 보이질 않아
녹슨 양철문 위 빛바랜 문패 뒤에 두고
발길은 절로 옛 벌판의 가슴에 닿는구나.
지평이 가다 흉터처럼 패인 웅덩이마다
물길은 고여 눈쟁이떼 올챙이떼를 키우고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노라고
토끼풀 독새풀도 우북우북 옛날처럼
퍼렇게 소리쳐 반기는구나, 손 내밀어
초록글씨로 저마다의 자리를 알려주는구나
그래, 너희들의 번지는 무사한데
깨진 함지박 같은, 그리운 얼굴들은
어딜 갔느냐 욕심없이 살아도
삶은 때때로 막막한 것이리, 들새들만
발끝에 채일 듯 날아오르고 저만큼
어느 위성에서 새로 이사 온 괴물이더냐
아가리 벌린 포크레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