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년 중 천지가 가장 푸르러 새벽에 눈을 뜨면서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싱그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5월입니다. 어딜 가나 짙은 녹색을 마음껏 바라보고 어루만질 수 있으니, 이번에는 ‘굳이 찾아가볼’ 곳들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그동안 전라도는 여행이나 각종 개발의 뒤켠으로 내몰려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으나 몇 년 전 보성의 대한다업이 휴대폰 광고의 배경지로 알려진 후로부터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을 몰아 5월의 푸르른 기운을 한껏 받을 수 있는 ‘전라도 차밭 3선’을 보여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전라도 차밭은 광고로 알려진 보성 외에도 강진·영암·장성·구례·광양·순천 등에도 있습니다. 그 중 규모나 풍경이 뛰어난 보성 대한다업 1·2다원, 강진 월출산 차밭, 영암 덕진차밭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
▲ 보성 대한다업 제2다원. 산비탈이 아닌 평지다원이자 드라마 <여름향기> 촬영장소로 이름
나 있다. |
| ⓒ 정민웅 |
#보성 대한다업 1·2다원
첫째로 보성에는 핸드폰 011 ‘수녀와 비구니’ 광고로 유명한 대한다업(보성차밭)이 자리합니다. 하도 대한다업만 알려지다 보니 보성에 차밭이 한 개뿐인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몽중산다원, 봇재다원 등 10여 개 차밭이 있습니다.
차는 물빠짐이 좋고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며 안개가 많은 곳에서 생산된 것이라야 색과 맛 그리고 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보성은 이에 가장 적합한 곳이기 때문에 국내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차산업이 활성화됐습니다.
쌀 퍼나르듯이 일본으로 차 좀 뽑아가려고 했던지 1939년 차밭을 일구기 시작하여 현재 30만평의 차밭이 있으며 해마다 5월에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대한다업은 늘어나는 관광객 수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다 주차료를 받기 시작했고 이제는 주차료 없이 성인 입장료 1600원을 받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한 여행사에 입장료를 위탁하여 대한다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강조하는데 위탁은 누가 내어준 것인지요? 위탁은 공짜로 내어준 건지요? 풍경이 좋아 몇 번씩 구경 오던 사람들이 단돈 천 원짜리 한 장에 기분이 상해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입장료 받기 전이나 후나 관광객들이 느끼는 풍경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죠.
대한다업은 입구 삼나무숲을 시작으로 곱게 구부러진 이랑들이 정겨우며 산 중턱이나 정상부에 서서 내려다보면 장관입니다. 녹차밭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새벽녘이라고들 하는데 다 헛소리입니다. 아름다움은 정해진 게 아닙니다.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일 뿐이고 고정관념이 섞이면 꼭 그만큼밖에 사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새벽녘 녹차밭이 아름답다면 ‘안개 낀’이란 전제가 붙어야 하겠지요. 녹차밭뿐만 아니라 ‘안개 낀’ 산하, ‘안개 낀’ 호수 등 안개가 끼면 신비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대한다업에서 가장 추천하는 녹차밭 풍경은 빨갛게 아침해가 녹색 이랑 뒤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침 해뜨는 시각 30분 전부터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면 감명이 더 클 것입니다.
대한다업 옆 봇재다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비탈의 모조리 헤엄치는 녹차밭도 일품입니다. 율포해수욕장과 아래 된장마을 호수 풍경이 함께 보이므로 푸르다못한 상쾌한 기운이 눈앞을 쓸고 지나갑니다.
또 보성의 차밭이 대부분 산비탈에 있는 차밭임에 비해 대한다업 제2다원은 평지다원이자 드라마 <여름향기> 촬영장소로 대한다업에 이어 보성에서 꼭 가봐야 할 차밭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이랑 사이로 곱게 심어진 삼나무들은 힘들고 지친 오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안길 엄마 품 같은 향수를 자극합니다. 보성차밭 하면 대한다업만 가고 끝나는데 또 다른 멋을 간직한 대한다업 제2다원을 놓치면 후회하며 울고 이를 갈 것입니다. 제2다원은 회천면 회천리에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멋진 모습을 보고 싶으면 땅바닥에서만 놀지 말고 10분 정도 산을 타 비행기에서 바라보듯 보십시오. 쫘악 엄청난 차밭이 몰려오는데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조금 힘을 들이면 더 값진 것을 받는 세상입니다.
 |
|
▲ 강진 월출산 차밭. 월출산 남쪽 기슭은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 차 재배에 적지로 꼽힌다. |
| ⓒ 김태성 기자 |
#강진 월출산 차밭
두 번째로 강진 월출산 차밭입니다. 단일 다원으로는 제주도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약 10만여 평의 차밭으로 태평양에서 설록차를 재배하는 장원산업의 차밭입니다.
월출산 남쪽 기슭은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 차 재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춰서인지 광복 직전까지는 국내 최초의 녹차 제품인 ‘백운옥판차’라는 전차를 생산하던 차 산지였는데 지금의 월출산 다원은 장원산업에서 1980년도부터 산간 지역을 개간하여 대규모의 다원을 조성해 일군 곳입니다.
전체 차밭 중 8만 평엔 일본 품종인 야부기다종이 심어져 있으며, 1만9000평에선 재래종을 재배합니다. 장원산업에서는 반제품 상태의 차를 만들며, 이른 봄 어린 싹이 나올 때 차 순 위로 98% 이상의 차광망을 씌워 채엽한 고급차 ‘우전옥로’도 생산합니다. 미리 신청하면 생산공장도 견학할 수 있으나 차 시음이나 구입은 할 수 없습니다.(문의 061-432-5500)
월출산 차밭의 특징은 한마디로 이국적입니다. 바위가 험상궂다 못해 괴팍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푸른 초원 같은 상큼함을 쏘이노라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유쾌하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풍차같이 얇고 긴 흰색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짧고 둥근 선풍기가 돌아갑니다. 이 선풍기는 멋으로 세워둔 것도 아니고 전기를 만드는 풍력발전기도 아니며 서리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걷다가 힘이 들면 차밭 사이로 난 길과 근처 2차선 도로를 이용, 차로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명산 월출산 안에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차밭이 넓게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차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소박한 절, 차밭을 마당 삼은 강진 무위사가 있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는 월출산 경포대 계곡이 있습니다.
가는 방법은 이정표에 월출산차밭이 나오지 않으므로 광주에서 13번 국도 타고 나주·영암을 지나 성전 가는 길에 풀치터널을 거쳐 오른쪽 경포대계곡 이정표 따라가면 됩니다.
 |
|
▲ 영암군 덕진면 백룡산 자락에 자리한 덕진차밭. 재래종 차만을 28년째 가꾸고 있는 역사 깊
은 차밭이다. 늘 보아왔던 차밭과 달리 재래종이라 차나무의 키는 무릎 높이 정도로 작고 차밭
모양도 애기 얼굴처럼 둥글둥글하다. |
| ⓒ 김태성 기자 |
#영암 덕진차밭
세 번째로, 영암군 덕진면 덕진차밭(문의 061-471-7560)이 있습니다.
크기는 3만5000평 규모로 그리 넓지 않지만 순수 재래종 차만을 28년째 가꾸고 있는 역사 깊은 차밭입니다.
늘 보아왔던 차밭과 달리 재래종이라 차나무의 키는 무릎 높이 정도로 작고 차밭 모양도 애기 얼굴처럼 둥글둥글합니다. 보성 일대 차밭의 품종은 일본 야부다기종으로 키가 크고 단위당 생산량이 많은데 많은 분들이 이런 차밭 풍경에만 익숙한 것 같습니다.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들판에서 멀지 않은 야트막한 백룡산(418m) 자락에 자리한 덕진차밭은 호남다원(한국제다)의 차로 광주 본사(062-227-7560)에 연락하면 주문할 수 있습니다.
덕진차밭의 멋이라 하면 월출산을 앞에 두고 비옥한 토지가 한없이 목마르게 펼쳐진 모습에 있습니다. 마치 바닷가에서 끝없는 수평선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는 이어도(이상향)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보성차밭이나 월출산 차밭에 비하면 덕진차밭은 찾아가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차밭 이정표가 전혀 없고 멀리서 봐도 차밭이 잘 보이지 않기에 그냥 두리번거려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알아서 광주서 영암까지 갑니다. 영암 다 가서 사거리 왼쪽에 ‘영보정’ 가는 길로 들어가 운암리 송석정마을 뒤편 시멘트길을 타고 산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저는 주로 신북에서 명동리 옥정마을을 거쳐 비포장 임도를 타고 덕진차밭에 가는 편인데 산 속을 헤매다 떠억 하니 금은보화를 내놓듯 뿜어내는 풍경을 만나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일반도로를 타면 승패를 이미 알고 있는 스포츠경기 재방송을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
|
| ▲ 값싸고 반찬 많이 오르는 ‘도로공원식당’의 백반. |
| ⓒ 김태성 기자 |
#맛집도 귀띔해 드립니다
전라도 밥이 맛있다는 소문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500년이 지난 후에도 이어지니 다른 데서는 여전히 따라 올 수 없는 독보적인 전통입니다.
‘평양감사도 전라도감사도 지가 싫으면 그만이다’는 말이 있죠? 평양에는 빼어난 기생들에, 전라도에는 상다리 부셔놓고야 마는 반찬의 가짓수와 맛에 누구라도 끌리게 될 법해서 이런 말이 생겼겠지요.
변함없는 전통을 이어가는 손맛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영암에 있습니다. 제육볶음, 수시로 달라지는 생선구이, 양념꽃게장, 더덕무침, 묵은지, 잡채, 찌개로는 냄새 안 나는 청국장, 국으로는 된장국, 꼬막, 토하젓, 밴댕이젓, 동치미, 오징어채무침 등 입과 눈을 혼란시키는 현란한 20여 가지 반찬이 밥상을 점령합니다. 늘 무리를 하여 먹고 나서야 후회하는 곳입니다.
13번 국도는 전라도 최고의 기사식당 접전지역으로 훌륭한 밥상-값싸고 반찬수 많고 맛있는-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상호는 <도로공원식당>. 위치는 13번 국도 영암 신북에서 영암 방향으로 있으며 메뉴는 오직 백반, 값은 5000원입니다.
‘여행이조아’로 통하는 정민웅님은 다음카페 ‘전라도여행’(http://cafe.daum.net/jeonlado99) 운영자이며 날마다 바람같이 전라도땅을 누비고 다니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삽니다.
[스크랩] 전라도닷컴/전라도여행/길떠나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