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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경리 선생 추모에 앞서....
어버이날...
그동안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 한 번 제대로 못 달아드렸는데...
몸이 자유로워졌기에...
새벽을 달려 원주로 내려갔습니다.
상쾌한 아침의 물기를 머금은 카테이션 바구니를 들고서 말입니다...
원주에 거의 도착해서 전화를 드리니 뭐하러 왔냐고 하십니다... 기름값도 비싼데 하시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는데...
하루바삐 반려자를 데려오겠노라며, 곧 더 좋은 직장 얻을 거라고... 위안을 삼아드리고,
한아름이나 되는 어머니의 진심어린 잔소리와 먹거리를 들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한없는 죄스러움 언젠간 풀 날이 있겠지요...ㅠ.ㅠ
지난 5일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타계하셨습니다.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원도 원주에는 우뚝 솟은 아파트와 덩치 큰 교회 아래 작은 공간에 토지문학공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1980년부터 16년동안 원주 단구동에 머물면서 토지 4,5부를 집필하신 곳입니다. 매번 원주 집을 내려갈 때마다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도 결국 들르지 못했던 곳입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고 박경리 선생의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됐고, 오늘 원주 토지문학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린 뒤 선생의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신다 했습니다. 도로 주변과 공원 내에는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온 사람들과 차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원주시민의 고 박경리 선생의 추모 현수막과 베너들이 거리와 추모식장으로 가는 길에 끝도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원주에서 16년이나 살면서 대하장편소설인 토지를 완간했으니 그 화룡점정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낱 현수막과 베너만으로는 추모행렬이 부족할 것만 같습니다.
선생이 쓰신 시가 추모식장으로 오르는 길 가에 단정히 놓여져 있습니다. 선생을 추모하러 가는 길에 한 번더 선생의 생전 모습과 열정을 되새겨 봅니다. 너른 정원 한쪽에서는 '옛날의 그 집'이란 주제로 시와 그림이 어울어진 시화전도 열렸습니다.
고 박경리 선생의 옛집 앞 너른 정원에는 추모식 준비에 분주하고, 희고검은 조화와 글씨체들이 시선 가득 들어옵니다. 고인을 향한 흰 국화 꽃송이도 엄숙하기 그지 없습니다.
토지문학공원은 토지문학공원은 선생이 생전 살던 단구동 일대가 단관택지로 조성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는데, 26년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가 완성된 곳이자, 선생의 옛집의 가치를 감안해 원형을 보존한 문화테마공원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토지문학공원 내에는 선생이 기거하던 옛 집과 함께 토지 작품소개를 위한 전시물을 갖춘 관리사무소와 토지의 배경을 아담하게 조성해 놓았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선생의 약력, 육필원고와 토지의 시대적 발간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하소설 '토지'에 대한 소개, 토지의 내용을 5부로 나누어 당시의 시대상황과 소설속의 허구적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토지의 공간지도를 통해 통영,평사리,지리산,진주,서울,간도,동경 등 토지에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해당 공간의 의미와 주요인물의 삶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선생이 마지막 발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순간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선생이 머물렀던 공간, 선생이 이뤄낸 업적, 그리고 평생을 기울여 만들어낸 토지의 공간들을 한걸음 한걸음씩 돌아보셨습니다. 이제 한 때 머물렀던 원주를 떠나 선생이 태어난 곳이자 영원히 머무를 통영으로 떠나실 시간이었습니다. 토지문학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선생의 영정은 검은 영구차에 오르고, 영구차를 시작으로 기나긴 차량의 행렬이 뒤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의 영혼이 떠나고 난 토지문학공원은 분주함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토지속의 배경을 조성한 평사리마당, 홍이동산,용두레벌 등을 둘러보고 선생이 기거하던 옛 집을 잠시 들렀습니다. 아담한 2층의 건물입니다. 창문 앞으로는 손수 만드신 자그마한 연못도 있습니다. 1층은 거실과 식사를 즐겨하시던 방과 이어진 부엌,집필실로 이루어져 있고, 2층 공간은 커다란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은방 장농 위에 커다란 슈트케이스가 얹어져 있습니다. 선생이 떠나시는 길에 들고 가셨을까요? 덩그라니 놓여진 가방을 보니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여정에 오르신 선생의 뒤안길이 아련하기만 합니다. 거실에는 옛 집의 각 방에 얽힌 선생의 이야기가 걸려 있고, '어떠한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남은 생애의 불길을 태워보겠다는 내 문학적 소망'이자 '토지 3부를 끝내고 인기라는 물결로 부터 빗장을 지르기위해' 내려온 원주와의 인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생의 집필실에는 커다란 선생의 사진과 함께 생전에 쓰시던 원고지와 안경, 펜, 커피잔, 재털이 등이 옛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인기를 떨쳐버리기 위해 인터뷰 제의를 거절하시며 서 계셨을 창 밖으로는 푸르른 녹음이 신선합니다. 한 카메라맨의 능숙한 손놀림이 선생의 모습을 찬찬히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비어있던 공간이긴 하지만, 선생이 가신 자리는 더없이 적적하기만 합니다.
한 소설을 위해 26년간의 위대한 시간을 보낸 고 박경리 선생... 집필한 지 26년이 지나고 화룡점정하 듯 마침표를 찍었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한 인간으로서 그 위대한 고집과 정열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자신이 키운 고추를 잘 말려서 꼭지를 딸때가 가장 기쁘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철저히 차단하고, 자연으로 돌아온 그 엄청난 결단력은 과연... 문학에 문외한인지라 토지에 대한 작품은 논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 대한 삶과 그 부단한 열정은 가슴 속 고이 담겨집니다.
고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시가 있어 남겨 봅니다...
마지막,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싯구가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진정한 삶을 누리고 가신게 분명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드라마 '토지' 촬영지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