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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예술 혹은 거대한 대지예술 `고인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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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에서 유럽대륙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막 인식하기 시작했던 시절. 역사와 유적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심을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으리라. 일생을 걸쳐 그 동경심을 따라 여행하는 이들을 생각해 본다.
한창 돌 작업에 빠져있을 무렵, 날이면 날마다 온몸에 돌 가루를 뒤집어 쓰고 밤이 새도록 내 키가 넘는 돌덩어리들과 씨름을 하곤 했었다. 한 번은 피죽(돌덩이를 가공하고 남은 한 면은 울퉁불퉁하고 한 면은 반듯한 돌)이 필요해서 돌 공장에 갔다가 쌓아 놓은 판석들을 안고 넘어지는 바람에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처들이 오래 전부터 시작된 돌과의 인연을 떠올려 주곤 한다.
얼마 전 영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받은 스톤헨지사진 엽서는 이런 마음에 불을 질렀다. 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돌’이 미치게 보고 싶어졌다. 내친김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상징인 고인돌을 찾아 고창으로 달려갔다.
산등성이의 수 많은 고인돌 군락
한적한 시골길을 한참을 달리니 산등성이를 따라 수많은 돌덩어리들이 그야말로 나뒹굴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기조차 힘들 정도의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어 차를 타고 달리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하늘은 거친 빗줄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끝없이 펼쳐진 돌덩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등줄기가 싸늘해지기도 했다. 주변에는 지나가는 차 한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아 자연 속에 완전히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고인돌 군집지역 주변으로는 공원조성공사가 진행중인 듯 보였는데, 문득 공원화되기 전에 그대로의 고인돌을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인돌 한 기(基)는 무덤이나 제단에 지나지 않지만 산 전체에 걸쳐 모여있는 고인돌들은 거대한 설치미술 혹은 대지미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 누가 이런 자연스러운 조형미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세계적 대지예술가 리처드 롱 아저씨도 울고 갔을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가정집 뒤뜰에 위치한 고인돌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고창 고인돌 군은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들을 접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형식 면에서도 탁자형(북방식)을 비롯 바둑판형(남방식), 지상석곽식(탁자형과 바둑판형의 혼합형)등 매우 다양하다. 수적인 면에서도 고인돌 채굴지를 비롯해 85개소 이상에서 2,0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미지의 고인돌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잠자고 있을 지 헤아려 보고도 남을 일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 외에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거석문화 유적지들, 예를 들어 영국 스톤헨지나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페루 쿠스코와 마추픽추, 프랑스 열석등은 지상 최고의 대지예술로서 많은 사람들의 경의와 동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고인돌 -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기를
형식을 갖추고 있는 유적지나 박물관을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비 때문에 사진촬영을 걱정했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비록 오랜 역사를 뒤로 한 채 각각의 번호판을 하나씩 달고 있었지만, 비에 씻겨져 촉촉하고 흙 냄새 나는 돌 본연의 형상을 드러낸 고인돌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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