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룡사 (경남 창녕 옥천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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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대웅전, 병풍처럼 둘러처진 관룡산과 잘 어울린다
불교에서의 최고 가치는 무엇일까? 역시 깨달음에 이르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난하기에 뭇 중생들은 극락에 가거나 아니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부처님께 무수히 예를 올리며 소망할 뿐이다. 그런데 자기 혼자 극락에 간다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지 않을까? 큰배를 만들어 가장 앞머리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극락에 가기를 소망하는 일가친척과 선량한 사람 모두 태우고, 뱃머리에는 용이 호위하면서, 고통의 이 땅(차안:此岸)에서 고통의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인 저 땅(피안:彼岸)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뜻이며 과거 우리 조상들의 가장 큰 꿈이었다. 고통의 이 땅에서 극락으로 인도하는 큰배가, 불교에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말하는, 바위로 된 그 배가 산마루에 있다는 관룡사를 찾아 나선다. 작년 겨울,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돌부처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겨, 당장 그곳을 찾아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안절부절 며칠을 보내다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관룡사를 다녀왔다. 그러고도 뭔가 허전한 듯 하고, 산아래 먼 곳을 바라보는 석불을 근 일년동안 잊지 못해, 이 해가 다 가는 이 계절에 다시 관룡사를 찾았다. 경남 창녕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관룡사는, 넓지 않지만 결코 좁다는 생각이 들이 않는 공간 속에 오밀조밀 갖출 것 다 갖추고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절 아래 주차장에서 황소걸음처럼 느릿느릿 걸어도 10여분이면 절 마당에 들어서기에, 서둘지 말고 산죽 사이로 난 옛 길을 찾아 올라가야 절 집에 가는 제 맛을 느낄 수 있고, 옛 길에는 다리 품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그 무엇이 숨어있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잡목과 산죽(山竹)으로 우거진 옛 오솔길로 들어서면, 우선 석장승이 서로 마주보며 왕방울 만한 눈을 부라리거나 송곳니를 드러내놓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송곳니를 드러내놓고 있는 왼쪽 석장승은 지하여장군일 테고 벙거지를 쓰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오른쪽 장승은 천하대장군이겠지만, 아무리 으름장을 놓고 위엄을 부려도 세월의 연륜에 위엄은 다 사라져버려 이제는 철없는 아이들이 봐도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느껴질 듯한 모습이다. 옛 길이 끝나는 곳에 삶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듯 초라한(?) 석종형 부도 몇 개가 길 아래 숨어있다. 스님이 돌아가시면 다비를 하고 사리나 유골을 수습해 모셔 놓은 것을 부도라 하는데, 대개 부도를 절 부근 길손이 오고가는 길목에 모아두는 것은,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히 공부해 깨달음에 이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시원시원하게 자란 대숲을 지나면 이내 아담한 산문(山門)이 올려다 보인다. 키가 큰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크기, 양반 집 대문보다 작은 산문(山門)이라서 일주문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하고, 그냥 문이라 하기에는 넘치도록 아름답다. 외형적 크기로 가치를 재는 사람이 보면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작은 산문 앞에서 '아! 이런 산문(山門)도 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 산문 주위에 나지막한 돌담을 둘러 작은 문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혹이나 여염집 문인 줄 착각이라도 할까 싶어, 문지방 돌 하나에 자그마하게 불(佛)이라고 새겨, 이곳이 지금부터 부처님 땅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고개 숙여 산문을 들어서는데, 문득 다른 절처럼 사람 기죽일 듯이 크게 일주문을 만들 수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좁은 문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좁은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세속의 때를 버리고 욕심을 줄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 산문(山門) 하나가 '우리 절 집은 이렇습니다'하고 말하는 듯해, 관룡사를 다 둘러보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키보다 낮은 돌담길을 따라, 산문처럼 작은 천왕문을 거쳐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 칠성각, 산신당이 있고 마당 앞쪽에는 약사전이 자리 잡고 있다. 다들 고만고만한 걸음 거리에 있어 한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대웅전부터 둘러보아야 하지만, 약사전이 가는 길목에 있어 자연스럽게 약사전에 먼저 발길이 닿는다. 사방 한 칸의 비좁은 공간이지만 벽을 화폭으로 삼아 산수화와 사군자, 포도넝쿨, 연꽃을 가득 그려 놓았는데, 화공의 높은 수준을 말해주듯이 그림이 시원시원하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데 벌써 칠이 벗겨지고 회칠한 벽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안목이 부족한 내가 봐도 염려가 된다.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난 뒤에 복원한다, 보존한다 법석을 떨기보다는 미리미리 보존하는 미래 지향적 가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작은 산문(山門)이 이미 '우리 절은 이렇습니다'하고 말해주었듯이, 관룡사는 건물의 크기와 웅장함으로 자기 자랑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건물은 크지 않지만 정성을 기울이고 높은 미적 수준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런 곳임을, 몇 곳만 둘러보아도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대웅전도 역시 그런 범주 안에 들기에 겉으로 봐서는 조촐한 규모이다. 그러나 대웅전 안에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답게 치장되어있다. 삼존불 위에 닫집과 우물천장, 부처님 뒤 벽화로 그려진 관음도, 빈틈이 없이 빼곡이 들어찬 단청과 벽화가 아름답다 못해 화려하다. 특히 불단이 다양한 조각으로 장식돼 있는데, 분할된 공간마다 하나의 독립된 주제를 조각해 놓았다. 연꽃밭에서 물고기를 잡는 해오라기,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천상, 모란꽃에 앉아있는 화려한 깃털의 새,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서 물고기와 게가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 등, 불단 조각 하나만으로도 대웅전의 아름다움을 다 채워준다. 대웅전은 보물 제212호 지정되어있다. 처음, 산마루턱 바위 위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불상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겨 관룡사를 다녀왔고, 슬픈 듯 아스라이 중생세계를 굽어보는 석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다시 이곳을 찾았다. '용선대'라 이름하는 이곳의 석불은 명부전과 요사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20여분 등산을 하면 만날 수 있다. 만약 용선대를 답사하지 않고 돌아온다면 관룡사 전부를 보지 못하였다고 할 정도로 소중한 곳이다. 용선대 석불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문화재를 분석하듯이, 석굴암의 석가여래상과 똑 같이 동향(東向)하여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 자세로 앉아 있다. 연화좌대는 정방형의 하대석과 팔각 중대석, 앙련을 하려하게 새긴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옷은 통견으로 불상 뒤로 옷 주름을 넘겨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불상 전체적으로 봐서 조금 둔탁한 모습이기에 제작 연대는 통일신라 말기로 추측된다. 등등..... 이렇게 학문적으로, 이성적으로 표현하기에는 경직되고 뭔가 부족하다. 천년을 그곳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자리에 앉아 중생계를 굽어보고 있는 석불의 모습이 내 감정에 따라 때로는 슬프거나 외로워 보이고, 때로는 아무 거리낌없는 무한의 자유를 보는 것 같아 호쾌해 보인다. 용선대 뱃머리에서 부처님과 함께 앉아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중생계를 내려다본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인간의 삶이 하찮게 여겨진다. 그 속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헤어나지 못하는 뭇 중생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서로를 해치는 뭇 중생들이 그저 측은하기만 하다. 그래서 용선대 석불이 슬퍼 보이는 것일까? 상하좌우를 살펴도 아무런 시각 장애가 없다. 겹겹이 쌓인 산야(山野)를 발아래 두고 낮에는 푸른 솔이,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예(禮)를 올리기에 용선대 부처가 호쾌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용선대 뱃머리에서 보면 관룡사에 이르는 길이, 저수지 옆길을 돌아서, 마을 느티나무 앞을 지나, 주차장에 내려 걸어 올라왔던 그 길이 부처님이 손바닥 바라보듯이 훤히 보인다. 내가 살아온 길도 부처님 눈으로 바라보면 저렇게 한 눈에 들여다보이겠지. 용선대에서 고통의 바다를 미처 건너지 못하고 하선해, 이제 내가 왔던 길을 역순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록 희로애락과 생로병사가 뒤섞인 중생계로 다시 돌아가지만, 잠시 용선대에 승선했던 마음을 품고 가기에 넉넉한 마음이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뒤를 돌아보면 용선대 부처님이 잘 가라는 듯이 그윽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속세로, 중생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관룡사 마당에 서서 고개 숙여 합장하고 올려다보니 멀리 용선대가 보인다. 다시 좁은 산문을 나서 이제 세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겁고 더디다. ♣ <찾아가는 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