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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건 무얼까?
도시의 계절은 여인의 옷차림으로부터 온다면 산속의 계절은
나뭇잎으로부터 온다. 오색옷으로 단장하는 아름다움 속에
세월은 그렇게 묻어져 가는 걸까?
무심히 산속을 거닐다 떨어져 있는 알밤을 주우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뜨거운 여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처럼 수백개의
가시로 몸을 무장하고 그 속에 단단한 껍질과 뜹뜰하고 끈적끈적한
속껍질로 감싸면서 키웠던 알맹이를 이렇게 쏟아 놓다니….
‘너도 어쩔 수 없는 놈이야! 이제 어쩔 수 없이 네 활개 벌리고
그 마지막 남은 밤송이마저 던져 버린 채 또 한겨울은 지내야겠지.’
손 안 가득히 담겨진 알밤을 보면서 저 나무는 이것을 남겼는데
나는 무엇을 나누어주고 무엇을 남겨야 하나 생각해 본다.
중생은 밤송이보다 더 많은 마음의 무장을 하고 내 것은 그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게 움추리는 중생의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이 세상에
부처님을 있게 했고 이렇게 땅의 두께보다도 더 두꺼운 인간의
번뇌 속에서 헤쳐 나오는 길을 배운다.
가을은 나눔의 계절이라고 한다. 산은 오색의 단풍을 선물하고 사과,
배, 벼 또 한 톨의 밤알…. 일년 내내 다듬고 아껴 두었던 것을
나누어 준다. 왜 모든 것들은 나눔의 행사를 하는데, 인간만이
거둠의 행사를 항상하는 걸까? 세상 살아가면서 인간도 나눔의
행사를 하기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에게 나누어 준
모든 것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모든 것들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얼마나 감사하며 소중함을 느끼고 나에게 베푼 것들에 대하여
무엇을 나누어줄까. 또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일까?
한 알의 밤알을 바라다보면서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느 노스님께서는 평생 동안 산에 일년이면 몇 그루의 나무를 심으셨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밤나무 몇 그루를 들고 심으러 가시는 스님을 보고
시자님이 말하기를 “노스님 그 밤나무 심어서 언제 따 잡수실려고
심으러 가십니까?” 하니 노스님은 물끄러미 시자를 바라보다가
“네가 주어서 먹고 있는 밤은 네가 심어서 먹는가?”라고 물으셨다.
노스님 말씀하시기를 “저만 아는 중생 같은 놈.”하신다.
어느 때 누구인가 심어 놓은 밤나무에서 알밤이 떨어지면 그것을
줍는 사람은 ‘누가 심었을까?’는 생각지 않고 떨어진 밤알을
줍는 것만 기뻐한다. 나도 이렇게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세상에 남겨야 할텐데…. 남겨주기 보다는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탐욕을 얼마나 덜어내고 있는가?
또 덜어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편안함과 기쁨을 줄 수 있을까?
바로 그곳에 존재의 가치가 있는데….
나는 세상을 향하여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 영원한 나의 스승인 이 스님을 생각한다.
어린시절 동학의 학인으로 공부할 때, 그때는 참으로 가난했었다.
한 벌의 옷으로 2년을 살았고, 어디에 여름옷과 겨울옷이 따로 있었겠는가.
내가 지객 소임을 살던 때 객스님 한분이 찾아 오셨고 그 스님은 몹시
지친 모습이고, 심한 기침소리로 객실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지객인 나는 안타까워 열심히 죽을 쑤어 스님에게 드렸으나 병에 차도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공양주 스님이 나에게 와 편찮으신 객스님께서
공양간 솔가지 속에 누워 계신다고 하여 가보니 정말 스님은 솔가지
위에 누워서 입고 계시던 누비두루마기를 이불삼아 누워 계시었다.
왜 이렇게 나와서 춥게 계시냐는 물음에 그 날은 다른 객스님이 오셔서
내 기침소리 때문에 그 스님이 잠을 못 주무실까봐 공양주 부엌에
있노라고 하신다. 이렇게 삼일이 지난 뒤 나는 또 아침에 죽을 끓여
객실 문을 여니 객스님은 안계시고 잘 개켜 논 누비 두루막과
한 장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 내용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간병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과
얼마 살지 못할 것이기에 감사의 표시로 이 누비두루마기를 놓고 가니
잘 입기를 바라며 자기가 입는다 해도 얼마 못 입을 것인데,
이렇게나마 보시하고 갈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그 시절 누비두루마기를 입는다는 것은 학인에게는 생각도 못했던 때이지만
누비두루마기 마저 놓고 엷은 옷으로 기침을 하며 눈밭을 걸어갔을
스님을 생각하며 나는 두루마기를 들고 정신없이 주차장으로 달려갔지만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병든 몸으로 마지막 남은 누비두루마기마저
놓고 떠난 스님! 그 두루마기를 안고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그 겨울의
추위보다 더 추웠다.
떠난 스님보다 더 아픈 마음을 안고 그 옷을 들고 동학사 뒷방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채소를 가꾸어 주시던 노스님께 그 두루마기를 입으시라고 드렸다.
그 스님과 함께 그 겨울은 날씨보다 더 추운 겨울이었다.
그 뒤로 그 스님은 나의 마음에 스승이 되셨고, 나의 가슴에 오직 하나 남은
스님이셨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과연 병든 몸으로 몸을 가릴 수 있는
단 한 벌의 옷을 벗어 놓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을까?
또 조금 있으면 겨울은 돌아오고 눈은 나리겠지.
------금화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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