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머님이 그립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말고 행길쪽에 묻어주고 비오면 덮어주고 눈오면 쓸어주오.
내 친구가 찾아와도 엄마엄마 울지마
울 밑에 뀌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 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시골 뒷 산길이 어두워질 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요즈음은 날씨도 오락가락 스산해서 그런가?
이미 이세상에 안 계신 두 어머님(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이 그립다.
두분은 남편두분이 친구사이로 어머님들도 아주 절친한 사이였고 두분이 동생들을 결혼시켜 사돈이 되었고 우리부부가 결혼을 해 겹사돈이 된 아주 특이한 가족이다.
시어머님은 6남매를 두시고 참 열심히 사셔서 자식들 모두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셨다.
나는 맏며느리지만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어머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 한이되고, 못마땅한 일도 많았을진데 싫은 내색 한번도 하지 않으셨던 우리어머님!
10여년의 투병생활을 하셨지만 아들이 워낙 효자라서 간병을 다 했으니 내가 비집고 들어갈수 없어 바로 모시지 못한 것이 또한 항상 맘에 걸려있다.
늦 손주하나를 땅에내려 놓으면 넘어져 다칠세라 늘 업고 다니셨던 어머님! 어머님!그 손자가 장성해서 아주 튼튼하고 영리한 아들까지 두었으니 안심하시고 편인하게 계세요. 그리고 6남매 모두 잘 살고있답니다.
너무너무 그립네요.
우리친정 어머님은 6남매를 두셨는데 딸5섯에 막내로 아들하나를 두셨다.
6.25사변 때 내가 초등학교(남산)4학년 때 아버님 고향으로 피난을 가서 아예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렇지만 서울이 복구되면서 아버님은 가족들을 시골에 둔체 일을 찾아 부산으로 가시고,난 무슨 뱃장이었는지 16살에 혼자서 서울 먼 친척집을 찾아 언쳐 살면서 중3으로 입학을 했다.
그래서 방학 때만 잠시 어머님을 뵈러다녔으니 어머님하고는 같이 마주 앉아본 기억이 별로없다.
난 이런 어머님이 곺으고 그립다.
그리고는 서울에 다니러 오셨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59세에 세상을 뜨셨다.
농토를 지키시느라 외롭게 혼자지내시던 우리 어머님!
그렇게 소중했던 자식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보내시고 보기도 아까운 아들마져 7살 때 서울로 와버렸으니 얼마나 자식들이 그리웠을까?
왜? 다 정리하고 함께 살지 못하고 생이별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남매들은 인자하신 아버님과 동거하며 외롭지 않게 학업에 열중하며 맘 편하게 지냈디.
우리 어머니!
내가 어머님과 절친하셨던 분의 며느리가 된것도 모르시고....
그리운 두분 어머님!
이 두분 어머님은 기일도 한날이이니 이련 인연은 드믈거같다.
천당에서 만나고 계시겠지요.
아무걱정하시지 마시고 편한하게 계세요.
두분 어머님 정말 눈물나게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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