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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화려한 여행
여행이라는 것은 역시 즐거운 것이다.
때로는 지칠 수도 있는 일상을 벗어나 어데론가 떠나보면 삶의 재충전이된다.
이번 여행은 오래 전에 함께 근무하던 막연한 사이의 친구가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모국방문을 해 여행길에 올랏는데 즐겁고 화려한 여행이었다.
당초에는 2박3일이 어떠냐고 했지만 난 부양가족이 있어 1박2일 코스로 정해 역시 막연한 사이의 옛동료들과 남도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먼저 도착한 곳은 보성녹차밭인데 몇년 전과는 화려한 변신을 했다. 그야말로 초록세상 보성차밭은 녹색 물감을 양손가락으로 듬뿍 그은듯 등고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물결치는 세상, 6월 햇살을 듬뿍 받으며 보성은 온통 초록빛과 녹차향의 싱그러움으로 장관을 이룬다.
차밭으로 가는 길엔 거목의 삼나무가 촘촘히 박혀 곱게 휘어진 아름다운 길이다. 삼나무가 내뿜는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내딛노라면 온갖 번뇌와 잡다한 근심이 홀연히 맑아지는 듯 싶다.

보성차밭에서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이동
낙안 읍성은 지난날 기회가 있어 몇번 들린적이 있었지만 갈때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낙안읍성의 개요를 보면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 때 파지성, 고려 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장군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 302호에 지정되었다.
조선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다른 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 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길이가 1410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4만 1천평에 달하는 3개 마 을 생활근거지를 감싸 안은듯 장방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 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도 91세대(2001년 기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 고유의 전통마을로 서, 민속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문을 비롯 서, 남문을 통해 성 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들며(사극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 촬영장소) 용인, 제주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이나 안 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 의 모습이기에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이고장은 고사리가 많이나는 고장인 듯 고사리가 많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지나지 못하는 것 처럼 욕심껏 사들고는 한센환자들의 애환이 쌓여있는 소록도로 향했다.
언제부터 소록도는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가 채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사슴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 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선착장도착 조금 오르다보면 여기저기 과거에 한센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유적지가 있고 과거에는 7만명의 환자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고한다.
그런데 환자들은 눈에 띠지 않았고 거의가 중환자이고 나이들어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지난날 소녀시절에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읽으며 가슴시려하던 그분을 다시한번 그려보며,중앙공원을 들어서니 탄성이 절로나오는 빼어난 조경이 나타난다.
이 중앙공원은 1936년12월부터 3년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명의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6천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며 이중에는 5억짜리 나무도 있었다.
이렇게 이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도 떳떳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들의 애환을
무엇으로 위로를 할 수 있을 것이가?가슴 한구석이 아려옴을 뒤로하고 여수로 이동.
여수하면 오동도, 오동도하면 동백꽃이 연상될 정도로 동백꽃이 유명한 섬이다.
또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기점이자 종점이기도 하다.
새벽에 일출정에 올랏으나 날씨가 흐려 일출은 보지 못했어도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동도는 그옛날 우리의 신혼여행 때 잠시들렸던 추억을 되세기며 향일암으로 이동.
향일암엘 가는데 여수에서 뱃길로 시간반이 걸린다.
그러니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유람선에는 "품바"라는 공연장이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품바타령이 흥겨웠다.
난생처음 이런걸 대하니 나야 있으나마나 하지만 흥을 돋아주는 관객들이있어 볼거리로는 그만이었다.
더구나 미국손님은 이이상 흥겨울 수가 없을 정도로 즐거워하니 다행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지나 목적지에 다으니 향일암가는 길 양옆에 이런저런 상인들의 손짓을 뒤로하고 향일암에 도달하니 작고 아담한 대웅전이 길손을 맞이한다.
향일암의 개요를 살펴보니 향일암(문화재자료 제40호)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으로 644년 백제 의자왕 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이라 불렀다.
고려 광종 9년(958)에 윤필대사가 금오암 으로, 조선 숙종 41년 (1715년)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개칭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충 무공을 도와 싸웠던 승려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 곳은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독서당, 취성루 등이 복원돼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 다. 향일암에서 바라본 금오산 바위봉 한편, 금오산의 기암절벽 사이는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에서 향일암을 오르는 산길은 제법 가파른 편인데, 중간쯤에 암벽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암자근처에 이르면 집채 만한 거대한 바위 두개 사이로 난 석문을 통과해야 하는등 아기 자기한 등산코스다.
임포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백년이나 된 동백나무와 금오산에는 흔들바 위가 있다.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장관을 이루어 향일암이라 하였으며, 또한 주위의 바위모양이 거북의 등처럼 되어 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닷가에 위치하면서도 염분이 없어 끈적거리지 않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향일암 앞 마당에서 아득히 수평선까지 시야에 담는 맛이 통쾌하기 이를데 없다.
이번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향일암을 뒤로하고 떠나며,이번 여행길은 즐겁고 화려한 여행이었으니 또하나의 추억을 만드는데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는 하루뒷날 우리집에서 여행 뒷풀이까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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