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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여행(2004.5.20)을 5박6일동안 다녀왔는데 먼저 도착한 곳은 계림이었다.계림은 대단히 웅장한 바위산 아래 이강이 구비처 흐르는 아르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계림은 극심한 지각변동으로 해지가 돌출하여 기암괴석을 이루고있는데,"桂林山水甲天下"라는 말이 있다. "계림의 산수경치는 천하제일이다"라는고유명사다. 옛 시인은 천하제일 산수절경 속에 사는 계림 사람들을 부러워하여 계림인은 되고 싶어도 신선은 되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고한다.중국 광서성 동북부에 위치한 계림은 중국내 유일한 화강암반지대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기암괴석 및 산수절경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만리장성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중국 10대 명승지이자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계림 기후는 겨울에 눈이 거의 없으며 사시사철 꽃과 녹음이 푸른 곳이다.
이번 중국여행은 남편 고교동창들 부부,동서네 부부 모두 4커풀에 8명이다. 우리 일행은 첫날부터 순조롭게 잘 어울리는 커풀들과 중국 여행길에 올라 먼저 계림을 관광하게 되었다.연령대도 비슷하고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되었었다.

관암동굴은 계림 이강 강변에 위치한 종류석 지하동굴로 그 산 모양이 금관 같아 생긴 이름이며동굴 길이가 12km이며 내부는 상중하 3층으로 나눠 동굴안에서 배로 이동하며 전체관람은 1시간정도 걸리는데 정말 신기히게 느겨지는 아름다운 동굴이었다.
장가계에 있는 천자산은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해서 많은 계단을 2시간 30분정도 오르면 산정상인데 좀 힘들기는 해도 여기서 바라보는 바위 봉우리들이 절경이다.장가게에서 케이불카를 타고 천자산으로 이동 하는데 그 비경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이 아름다웠다.유명한 산수화 그림들이 상상화로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있는 절경 앞에서 탄성이 절로나온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부럽다.
첩채산은 4개의 봉우리들이 이어진 산의 표면이 마치 비단을 포개어 놓은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계림 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명월봉으로 높이가 223m.가는 곳 마다 절경이니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황룡동굴은 석회암 용암 동굴이며,지하2층에서 시내가 흐르고 있는 면적이 엄청나게 넓으며 수많은 갖가지 모양의 종류석들이 장관을 이루고있다.이곳은 1983년에 발견된 곳으로 "중화최대의 아름다운 저택"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닐 정도로 그 아름다움이곳곳에 이름을 떨치고있다.내가 표현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종류석의 길이가 27m기둥에 1억원의 보험을 들었다고한다. 종류석도 엄청나지만 동굴안에 연못이 4곳이나 있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으며,특히 동굴안에 엄청난 폭포가 있다는 것이다.이 폭포는 요금을 별도로 내고 들어가는데 그 폭포소리가 엄청나게 크게울려 심장 약한사람은 근처에 가기를 꺼릴정도였다.자연의 신비라고 하지만 이렇게 감탄을 연발해야하는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렸다.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 712~756 재위)의 귀비(貴妃). 현종이 그녀에게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자 잇달아 반란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당조(618~907)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한 중국 시와 희곡의 주제가 되어왔다. 고관의 딸이었던 그녀는 중국 역사상 절세의 미인으로 통하는 몇몇 풍만한 체구의 여인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에는 현종 아들의 비였으나 그녀에게 매혹된 60세의 현종은 아들에게 그녀와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얼마 후 그녀의 두 자매도 현종의 비로 맞아들여졌고, 사촌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은 재상이 되었다. 돌궐족 출신의 젊은 장군 안녹산(安祿山)은 양귀비의 득세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그녀는 그를 양자로 맞아들였는데 실제로는 연인 사이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처럼 든든한 배경을 지닌 안녹산은 20만 대군의 통수권을 쥐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양국충의 권세를 질투하여 황제를 배반하고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756년 반란으로 인해 수도가 점령당하자 현종과 황실은 피신해야만 했다. 도망중에 황제의 친위병들은 황실의 몰락이 양씨 일가 때문이라고 여겨 양귀비와 양국충을 처형했다.
진시황릉안의 병마용
로마 제국이 서방에서 그 세력을 확장할 무렵 동아시아의 진이라는 나라의 국왕은 다른 제후국 국가들을 점령해 통일 국가를 만들었다. 역사에 남을 이 승리자는 바로 진시황제다. 그는 중국 최초의 황제이자 만리장성의 건축자이기도 하다. 기원전 210년, 그는 15층 빌딩 높이의 여산릉이라 일컬어지는 거대한 분묘에 묻혔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사료란 현재 우리가 과거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그 사료와 더불어 역사가 남긴 유적 또한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보다 확실한 과거의 산물일 것이다. 1974년과 1976년에 걸쳐 섬서성(섬서성) 임동현(임동현)의 여산릉유지에서 발견된 진시황 부속능에서는 계속된 탐사에 결과, 실물 크기의 정교한 병사·병마용이 무려 6천구 이상 출토되어 진시황 지배의 막강함에 놀라게 하였다.
이 중국(장가계)여행기는 작년에 다녀 온 것인데 인제야 올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