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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왓트 사원
앙코르와트는 세계7대 불가사의에 하나로 1200년 전 3만명이 코끼리와 함께 30년을 걸쳐 완성했다고 하며,오랜 세월 자연과 사람들의 손을 타서 훼손되었지만 아직도 험한 세월을 이겨낸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큰돌을 마치 주단처럼 깔아 놓은 참배로에 들어서면 중앙사원의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원은 웅대한 방추형의 중앙탑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어 있는 행랑, 그것을 둘러싼 삼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축구성은 입체적이며 중앙이 약간 높게 되어 있다.
이런 모습의 앙코르와트(앙코르라는 단어는 왕성함을 의미하며 와트는 사원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는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 초에 건립한 사원이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그들의 신과 같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앙코르와트도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아바르만 2세가 브라만교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다.
세계의 중심으로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을 돌로 정확하게 쌓아 놓았으며, 높이가 59m에 이르는 중앙 사원탑의 끝에서 삼중으로 둘러싼 사각탑 끝을 선으로 연결해 보면 사각뿔의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사원의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을 약간 받긴 했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 장식 등에서는 그들만의 앙코르 특유의 기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760m에 이르는 회랑 벽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성한 우물, 제3회랑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수랑과 탑 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구조물이다.
조형물로는 하늘의 무희‘아프살라’, 여러 개의 머리를 부채처럼 치켜든 큰 뱀, 창문이나 기둥의 장식과 조각 등이 보인다.
사원에는 벽화, 조각 등 불교 미술품이 가득 차 있어 사원 전체가 불교 미술의 보고로 되어 있다.
특히 입면 구성의 기술은 크메르 예술의 압권으로 전해진다. 또한 제2회랑 및 제3회랑의 네 귀퉁이에 있는 포탄형의 탑은 중앙사원의 탑과 함께 이등변삼각형의 입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 같은 기하학적 구성은 힌두교 사회의 계급제도와 인도 부다가야 오탑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해진다.
세밀한 구조를 살펴보면 홍토를 쌓은 위에 사암을 두껍게 붙인 뒤 그 조각 표면에 새겼으며 세부 장식에는 인도적인 것과 비인도적인 것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비인도적인 부분에는 이웃 나라인 참파나 자바 유적의 양식과 유사한 경향이 발견되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양도 간혹 있다.
이 유적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로 저수지와 운하 망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수량조절과 관개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우주론에 입각한, 우주 중심부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주론적 사고와 도시의 관계는 주민과 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설정되었다.
중심부의 산, 즉 피라미드 사원은‘데바라자’라고 불리는 신격화된 왕이 관장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왕은 절대적 신의 하나로 동일시되었고 이런 동일시는 왕이 죽었을 때 중심부 사원을 왕의 사원이나 무덤으로 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앙코르에 있는 다른 많은 사원들 역시 인도의 우주론과 신화적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5박6일의 일정이었지만 앙코르왓트 사원은 1박2일에 불과했으며 자세히 보려면 일주일은 걸린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 1950년~1960년대를 상상하게 하는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
비행장시설이 열악해서 큰 비행기는 다닐 수도 없고, 또 앙코르왓트 사원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더 이상 확장도 하지 않는다고 하며, 사람들은 깡마르고 키가 작은 소수민족인데 남녀 모두 큰 눈에 순박함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날씨는 우리나라 가을날씨 였으며 앙코르왓트 사원은 입구서부터 경탄을 자아내는 웅장한 사원이었다.
앞으로 더 자세하게 설명 올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님들! 잘 계셨죠.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