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불러보는 어머니!
기본 주제방 2004/08/19 16:11   http://blog.azoomma.com/jin7533/152684

             
                              이제야 불러보는 어머니!

 

 오늘같이 서늘바람이 불고 가을을 느끼게 되면 사람이 가끔은 철이드는 것 처럼느껴진다.
그래서 우리어머니의 한 스러웠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가한다.

우리어머니는 큰 며느리한테 어머니라는 소리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37년을 동거동락 하다가 가슴에 맺혔을 한을 안고 다시 못올 저 세상으로 가셨다.

우리부부는 원래 사돈간이다. 

시아버님과 우리아버지는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시아버님의 사촌 남동생과 우리 고모를 부부로 결실을 맺게하였으니 우리두집은 사돈간이 되었고 두분이서 친하게 지내시니 자손들도 왕래가 잣아 너무나 잘 알고 평소에 아저씨,아주머니로 통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백마탄 왕자로나타난 남편과의 인연을 어찌해야 좋을지몰라 고민을 많이 하던 끝에 드디어는 결혼에 골인을 해서 우리두집은 영원한 겹사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평소에 아주머니!아주머니하고 지내던 터라 결혼을 해서 바로 고쳣어야 하는데 그만 시기를 놓쳐 영 나오질 않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아버님!,도련님! 아가씨!서방님!이 모두가 내게는 큰 고역이었다. 

어쩜 그렇게 입에서 그런말들이 나오질 않는지 여간고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직장을 다녀 집에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때로는 다행스러웠다.

날이갈 수록 더욱 심해져서 영 그런 정해진 시댁의 고유명사는 물건너 갔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는 항상 한다리 걸고 말을 한다.

만약에 시동생이나 시누이가 밖에서 들어오는데 내가 먼저 보았어도 어머님이 누구냐?그러면 모르겠느데요. 하며 못 본걸로 한다. 
 
이렇게 37년을 살았다.

그래도 어머님은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하고 기다리셨을 것이다.

이런걸로 문제삼아서 탓하는 사람은 가족중에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도 내 자신이 야속하고 가족한테 미안한 생각은 있었는데 억지로 않되는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고 동서들한테도 동서왔어!
이런말이 나오질 않아서 늘 작은엄마,작은아빠로 통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무시하는 행동은 전혀 아니었기에 그들도 덥어나가며, 나를 여지껏 신주단지 모시듯한다.

정말 우리 가족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어머님은 내가 그렇게 어머님을 한번도 불러드리지 않았어도 큰며느리를 깨진 똥단지 위하듯하며,이 큰아들,며느리를 떠나면 못사는 것 처럼 1년에 한두 번 다른 자식들 집에가서 한밤도 주무시지 않고 돌아오셨다.

나는 그 것이 고마웠다.

내가 도리를 다하지 않아도 저렿게 내게 다시 돌아와 주시는 것이 그렇게 고마웠다.

10여년을 누워서 지냈지만 나는 짜증한번 부리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을 했을대 일인데 손자가 간병을 맏아있는 시간에 변을 본다고 뒷처리를 못해서 팬티에 실례를 한 것을 신문지에 꼭꼭싸서는 내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해온 나에게 그걸 빨으라고 하셨다.

 

그동안 딸들도 다녀가고 작은 며느리들도 다녀 갔건만 굳이 큰며리한테 시키는 것은 나를 그만큼 믿기 때문이구나 하고는 고맙게 생각하며 군말없이 빨았다.

 

지금생각하면 버려버리고 하나 사면 되는걸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햇구나 하면서도 후회는 하지않는다.

 

퇴원을 해서는 혼자 못잔다고 누구든 옆에서 같이 자야한다기에 나는 내가 그동안 못해드린거 보상해드린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한방에서 잠을 잤다.

 

얼마후에 남편이 자기하고 교대를 하자기에 며칠 그렇게 했더니 그것도 불편해서 아예 우리 부부가 어머님방으로 이사를 했다.

 

차라리 그게 속이 편했다. 어머님은 몸이 성치않으니 혼자있는게 불안해서 조금도 혼자있기를 거부했었다.

 

어머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 손을 거부하고 자식만 의지했으며,그래서 나의 남편은 내가 할일을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도맏아서 했다.


우리는 이렇게 더도 덜도 아니게 항상 처음과 같이 똑같이 고부간의 갈등이란건 생각도 해보지 않고 37년을 한지붕밑에서 살았는데도 우리는 서로가 부딛치지 않고 잘 견디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애절하게 눈물이서린다.

인제는 점점 상태가 점점심해져서 말도 못하고 누워서 음식을 (코에 호수를 끼었음)코에 넣어드리면 그동안에 내 옷자락을 만지며 손가락으로 비벼덴다.

일종에 고맙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우리어머님! 그렇게 어려운 살림에 6남매를 당당하게 키우시고 자신도 당당하게 사셨다.

 

이렇게 간병한번 제대로 하지않은  불효막심한 며느리를 그렇게 애지중지하신 우리 어머님! 내 아들을 잘도 키워주신 우리어머님!!!!!!
어머님! 저 어머니 사랑했었답니다.
어머님-------------------------------!
저 용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