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살린 이름. 어머니-
우리 어머님은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1개월 전에 90세를 일기로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시던 자식들을 뒤로 하고다시 못올 길을 떠나셨지만 나는 우리 어마님을 존경하며 잊을 수가 없다.
내가 37년 전 시집을 오니 대 가족의 경제를 움켜쥐열심히 살고 계셨다.
어머님은 본래 넉넉하지 않은 집인에서 남편의 내조를 훌륭하게 하셨는데 아범님은 문을 만드는 목공의 장인이셨다.
목공소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식사를 도맡아서 수십년을 하셨으니 그 내조가 얼마나 큰 일인가. 그 뿐이 아니라 6남매의 어머니로써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 나를 위하는 일은 하지않고 근검절약해서 그 어려운
살림에 6남매를 훌륭하게 키워서 지금은 6남매 모두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독 길러주셨다.
우리 어머님은 한국경제를 살리기 전에 우리집의 경제를 살리신 분이다.
그 예로 6.25때 시골로 피난을 가서도 낮에는 억척스럽게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서 가족들의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셨다.
그 동안 근검절약으로 집도 그 시절에 2층 집에서 평범한 수준의 생활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맏 아들을 결혼 시켜서 한집에 대 가족이 살게되었다.
내가 시집가서 잊을 수 없었던 일은 그 시절엔 연탄을 사용했는데
방이 여러개 있었어 방마다 연탄 갈아주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방 마다 갈아주는게 아니라 이 방에 몇 시간,
저 방에 몇 시간 이렇게 나누워서 연탄 불을 들고 다니며 방에 냉기만 없이 연탄 절약을 하고 계시는데 신혼인 내 방은 너무나 추워서
호마아카 장롱이 쩍쩍 금이갔다.
그리고 방안에 젖은 걸레를 놓아두면 얼어서 사용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이 정도로 절약을 하셨으니 다른 것도 얼마나 절약을 하셨겠는가?
대 가족의 먹거리를 사러 싸다는 시장을 찾아 다니며 전차 비가 아까워서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 오쎴던 일들!
만약에 이 정도의 절약이 아니였다면 오늘이 있을 수 없었으리라.나는 이런 우리
어머님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존경했고 은근히 배워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님 못지 않게 근검 절약으로 오늘까지 살아오고 있으며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보지 않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불편함이 없다.
비닐 봉지도 씻어서 한번 더 사용하고간장 된장
고추장 담아먹고, 집에서 입는 옷은 사 본 적이 없다.
외출복이 나이먹어 초라 해 지면 집에서 입는다.
단독에서 이곳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동서들 몰래 가져 온 것이있다.
뭐냐하면 어머님이 35,6년 전에 구입을 하셨을 압력 솥이다.
스텐 도 아닌 양은(한일) 인데 대형이라서 쓸모가 있다.
아마도 어머님이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그 시절에 흐믓해 하시며 아껴 쓰셨을 것인데 너무나 오래되어서 걷 모양은 무척 초라 해 보이지만 사용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아 없다.
"형님! 정말이지 저건 버리고 가세요." 그래서 몰래 가져와서는
너무도 잘 쓰고 있는 것이 많은 량의 우거지를 삶는 다거나
기타등등 참 잘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가 37년동안 어머님과 같이 살면서 배웠으리라.
나는 이런 우리 어머님이 우리집 경제를 살리고 나아가서는
한국의 경제를 살리신 분이라고 믿기에 상을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