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의 삶이 24시간밖에 안 남았고
그 사실을 당신만 알고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아마 제 죽음을 주위에 알리고
차분히 주변정리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 유서를 쓰고
주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주님품에 안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하기 싫다구요?
물론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리 좋은 단어는 아니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향의 선산이나 추억의 장소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도 할 것입니다.
또,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만나
짧지만 마지막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기도 하겠지요.
혹은 평상시 원수 같이 미웠던 사람을 실컷 패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실컷 먹고 배 터져 미리 죽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낭만적인 사람은 사랑하는 부인이나 애인과
조용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그 품안에서 죽기도
할 것입니다.
저도 사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흘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들려 오는 부음과
지난주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어서 돌아오라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설교를 듣고
제 자신도 죽음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정해진 죽음을 향해서
우리는 서서히 다가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앞에 닥친 일에만 신경 쓰다가는
평생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죽음이 전혀 예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나 떠난 후 이 세상에 홀로 남아 있을 아내에게!
막상 유서를 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하네요.
그 동안 살아온 제 인생을 가만히 돌아 봅니다.
유서를 쓴다고 이렇게 앉아 있으니
그래도 40여년 인생 중에서 연애기간을 포함해
20여년이란 세월을 같이 한 당신이 먼저 생각나는군요.
여보, 미안해!
슬프지만 한편 설레는 마음으로
이 유서를 열어봤을 당신을 생각하니
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영화 같은데서 본 모든 유서에는
기본적으로 재산분배나 비자금에 대한 언급이
꼭 있어야 하지만 난 아무 것도 없네요.
아이 둘만 당신한테 짐으로 물려준 것 말고는
당신에게 줄 어떤 것도 없습니다.
처음 만나 연애할 때 당신은 참 이뻤지.
그러나 지금은 날 만나 마음 고생도 많이 하고
주변 일로 많은 부담만 지워 준것 같구려.
여보,
미안해.
난 지금 아침방송때문에 회사에 일찍 나왔고
이제 당신도 겨움이와 다움이를 데리고
교회로 가는 길이겠지..
어젯밤에는 당신의 자는 모습을
일부러 한 번 더 쳐다 보았어.
집안팎 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지만
그래도 가정을 위해 잊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는 당신의 모습.....
그 귀엽던 얼굴, 예쁘던 손 다 어디 가고.....
내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제 남아 있는 동안 조금 더 진실하게 살고 싶고
체온이 있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요.
남아 있는 두 자녀가 아버지를 그려 보거든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었다는 얘기만 들려 주어도...
나 이렇게 먼저 갑니다.
슬픔과 고통도 아픔도 없는 하나님곁에서
당신 올 그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렵니다.
잘 있어요.
마지막으로 시 한 편 옮겨보지요.
류시화 시인의 가을 유서입니다.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