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2003/12/12 17:43   http://blog.azoomma.com/jeongann/109219

사랑하는 아버님,
간밤 무서리에 온몸 진저리치더니
들국화 노오란 꽃잎이 너무나도 눈부십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리고 있네요.

비가 그치면 날씨는 더 추워지겠지요.

아마 오늘 저녁에도 창을 때리는 바람에
많은 잎들이 떨어졌겠지요?
아버님 누워 계신 그곳도 춥지 않지요?
얼마전에 첫눈도 지나갔는데요.

아버님 계신 그 곳에도 눈이 내렸나요?
아니면 아름다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날인가요?

아버님,
오늘은 아버님 모시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효도여행 떠나려고 여행사와 스케쥴도 확정했고
여권도 여행사로 보냈어요.
아버님께서는 너무 큰 돈이라고 깜짝 놀라시겠지요.
2천 5백여만원되는 여행경비는
이미 차곡차곡 들었던 적금을 해지하기로 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거든요.
칠순잔치 이벤트로 아버님을 꼭 모시고 가려고 했던
효도여행을 이제야 가게 됐습니다.
아버님도 그 자리에 초대할건데요. 꼭 와 주실거지요?

아버님,
제가 몸 담고 있던 방송국 파업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가슴을 쓸어 내리셨잖아요.
노조원들이 금식한다는 뉴스를 들으시고는 함께 굶으셨고
제가 구속됐다는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셨던
아버님이셨잖아요.
CBS가 얼른 정상화 하기를 그렇게 간절히 염원하셨지만
끝내 아버님은 감기지 않는 눈을 감으시고
한 많은 이 세상을 그렇게 조용히 떠나셨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버님 떠나신 뒤에 CBS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웅지의 나래를 펼치고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 기관이니까 잘 될거라고 격려해 주셨고
조금씩 보태 주시던 생활비 덕택이겠지요.
그러니 이제는 전혀 걱정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실 때 남기신 유언처럼
저도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정말 소중한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 남아 계신 어머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시던 말씀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칠남매를 대학에 보내시기 위해서
새벽부터 몸이 부서지도록 논밭과 싸워 오시더니
결국은 효도 한번 받지 못하시고 뭐가 그리 급하셔서
칠십도 다 채우지 못하시고 바쁘게 삶을 마감하셨나요?
당신에게 남은 것은 돌아가실 때 병원비 백여만원과
뒷굽이 하나도 없던 구두 몇켤레,
그리고 장롱에는 볼품없는 시계 몇개와
변변치 못한 유행이 다 지난 양복 몇벌이 고작이었지요.
아버님 계신 그곳에서는 좋은 옷도 입으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많은 사람과 좋은 시간
많이 가지셨음 합니다.

그런데 아버님,
효도여행 간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왜 눈물이 자꾸 나네요.
술 한잔 드시고 오셔서 부벼 대시던 아버님의 따스한 볼과
세상에서 제일 넓었고 포근했던 아버님의 가슴속이
오늘저녁에 한없이 그리워집니다.
우리가 자주 길잃고 헤맬때 마음부터 먼저 달려가는 곳,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신 아버지와
따뜻한 고봉밥 지어놓으신 어머니가 유난히 그립습니다.
스산한 찬 겨울바람속에 나가 서 있으면
아버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오늘만큼은 약한 눈물을 보여도 괜찮지요.
한 달음에 달려가면 거친 손으로 덥석 잡아 주시겠지요.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待니라.'

한나라 한영이 지은 시경해설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죠.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아버님 떠나신 2년이 되는 날에는
이사 온 저희 집에 아버님을 초대하겠습니다.
그때 오셔서 생전처럼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다 살펴 주시구요,
다가오는 설에도 가족 모두 떠나는 여행에 꼬 오세요.
아버님께서 그곳에도 오실 것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그 곳에서 아버님 그리도 좋아하시던 약주 한잔
꼭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님 그 때 뵙지요.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