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는 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에 밤새 준비해간 과제물을 앞에 나가 발표하는 것이 부끄러운 나머지 차마 책가방 속에서 끄집어내지 못해 우리줄 열 여섯 명의 점수를 모조리 떨군 적도 있다.
나는 또 일기를 쓰고 늘 뭔가를 끄적거리고 활자라면 뭐든지 읽어내고 싶어했던 재미없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 때의 버릇이 아직도 몸에 배어 지금도 때로는 꼼짝않고 혼자 지내는 것을 즐겨한다.
그 언제부터인가 나는 여행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청량리역에서 부산진역까지 무려 열 두 시간을 앉은 자리에서 꼼짝않고 있어야 하는 그 기나긴 여행이 첫발이었다.
차츰 나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용기를 내어 옆자리 앞자리 건너편자리 그리고 좁은 복도를 지나며 커피를 팔던 졸린 눈의 여승무원에게까지 나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일본에 갔다.
이국에 대한 두려움 탓인 지 여행지를 결정하고부터 내내 '철저한 준비 아니면 죽음' 이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포켓용 생활일본어 책을 사서 달달 외웠고 토쿄 지하철 노선도를 그려가며 외웠고 어디에서 묵을 지 어디 가서 무얼 주문해 먹을 것인지까지 정해두었다. 당시엔 그렇게 하는 것이 나로서는 '마땅한' 일이었지만, 이제 생각하니 여행의 재미를 포기하기로 작정하지 않은 다음에야 감히 할 짓이 아니었다.
멕시코에 갔다.
하얀 머리팀의 유일한 까만 머리였던 나는 그 덕에 많은 봉사를 해야 했고 덩달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그사람을 만났다.
멕시코여행은 기나긴 여정이다. 고통 속에서 시작하고 신음하다 끝이 난다. 낙오자가 속출했다. 일부는 끈적한 무더위탓에 일부는 하염없이 흔들려야 하는 버 스로의 이동에 질려서 쓰러졌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사람은 침착했다. 늘 겸손을 잃지 않았고 필요할 땐 용감했다.
배우려는 의욕이 있었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몇 해 어린 듯 했지만, 그의 몸짓에는 정중함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그 나라 멕시코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잊었지만 그사람이 나에게 꽤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것만은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잘 될지 모르겠다.
카이로, 2004년 여름날, 한 지붕 밑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