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비슷한 걱정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아주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살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되는 관계들이다.
요즘은 전혀 꿈꾸지도 않고 모르던 세계인 병원에서 일을 하고보니
그 동안 나는 너무 모르는 것 투성이다.
늙는 속도가 너무 빨라 야단들이다.
애들은 낳지 않아 또 난리법석이고.
일 할 사람들이 없어서 공장이 멈추고
돈이 벌리지 않는다고 파업이 줄줄 이어진다.
개인간병을 하게 되었는 데
이 분 연세가 백 살 하고도 여섯이다.
일세기를 넘어 건강하게 장수 하시다가 처음 아퍼서 병원에 입원하고 나와 만나게 된 사연도 신묘막측하다.
그렇게 할려고 해도 안 될 일들이 너무 평범하게 벌어진다.
생전 제대로 아퍼보지 못한 장수하는 어르신을 보니 실로 정말 이렇게 백년이 훌쩍 넘게 살 수도 있구나 절감했다.
" 나는 오래 살아서 불쌍한 사람이여..나를 죽여 줘..아구 아구 아퍼 죽겄어.."
정신도 간병인 나보다 더 영롱하시다. 똥을 쌌다고 말씀 하시고는 아직 더 있다가 치워야 기저귀를 아낄 수 있다고 하신다.
백수를 넘긴 환자에게 주사 한 번 놓는 것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 안그래도 아퍼서 죽것는 디 왜 나를 찔러 아프게 하냐구?"
듣고보니 맞는 말씀이다. 섣불리 주사를 투입하는 것은 간병인의 입장에서 간단하게 편리함만 추구하다보니
항생제나 소염제가 무차별로 주입이 되고 있었다.
말이 백년이지 찬찬히 따지고 보면 19세기 사람을 내가 만지고 주무르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보통 인연이 아닐 듯 싶다. 전혀 피 한방울 섞일 리 없는 관계임에도 그 어르신은 나보고 하소연한다.
나 같이 불쌍하게 오래 살지마라..
거기 다 아들없이 살면 더 불쌍하다.
난 돈도 없다.
분명히 나하고 절대적 상관이 있는 하소연을 밤이고 낮이고 시시콜콜하게 가슴에 팍팍 박힌다.
너무 오래 사는 것은 또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될 터이니
나보다 자식이 앞서서 가버렸으니 축 늘어진 젓가슴에 묻은 무덤같은 상처를 드러내놓고 투덜대신다.
병원에 나하고 같이 있는 동안에 한 번 묻고싶은 질문이 있었다.
반세기를 먼저사신 소감을 묻거나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한마디 하시라고 하고 싶었는 데.
이 할머니는 단지 내가 똥만 치워주는 똥치기로 보이시나 나만 보면 똥쌌어! 똥 치워? 이러신다.
하긴 어쩌랴.. 요즘은 가족도 못하는 그 똥치워 주는 것은 전문가가 따로 있는 시대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주변엔 웬 찹쌀떡장사가 새벽 한 두시에 떠들어대니 그 소리에 예민하게 잠든 잠을 깨워버렸다.
그 때 한 숨 쉬시며 하시는 말씀이
" 어쩔꼬..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나는 일세기 넘게 한 사람의 걱정이 나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걱정하는 그 오늘이 아직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