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가 먼저 여행을 떠납니다...
詩가 아닌 詩 2008/04/06 16:59   http://blog.azoomma.com/ifg01/272400

나에겐 여행은 반드시 나 살던 곳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인 줄 알았다.

누가 처음부터 여행은 나부터 점검하고 내 주위부터 시작하라는 조언만 해 주었더라면

서울 살았을 때 도봉산이라든가  수락계곡등 구석 구석에서 개구쟁이처럼 놀다가 해가 뉘엿 뉘엿 돌아올 무렵에 차비가 없어 걸어 오는 길에 주저 앉아 엉엉울던 열 두살때도 그게 여행의 시작이엇다는 것을

몇 십년후에 깨닫기는 너무 머쓱한 늙은이로 변해 버렸다.

 

요즘은 외국에서 가끔 보자는 메일도 귀해지고

우표사는 이도 없어 우체국은 일괄로 요금계산하는 우편요금이 더 흔하고

어쩌다 그림엽서 보는 게 골동품보다도 더 귀한 일이 되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려나 아예 기대도 안하는 이유는 우선 우체국 가는 일이 기껏 돈 찾는 것이 고작이고 어쩌다 택배나 보낸다고 빨간 우체통을 보면 그냥 스치고. 보낸 적 없는 편지에 답장을 기다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고. 이게 습관성 추억이다.

 

불과 몇 년전에도 나에게 그림엽서며, 크리스마스라고 카드 보내는 그 친구는 이젠 아주 쉬운 메일 한 통도 보내지 않는다. 이러니 메마른 마음들은 오죽할까... 세상 편해지고 부터 우리가 잊은 것은 너무 많았다. 할 수 있는 조금은 불편함이 있는 주고받는 행위는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기분이다. 누구한테 인질처럼 묶여 있어도 협상하나 합의 한 번 이뤄지지 않는 잊음들이 너무 흔하다.

 

한 빌딩에 오르내리는 수단인 엘리베이터 덕분에 걷기를 잊은 나는 비상계단도 있는지 없는지  이젠 걸어 오르는 수고로움도 귀찮은 일이라고 과감히 여기게 하는 이런 상태를 뭐라고 심리표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백 미터를 뛰어 남보다 일찍 도착해야 하는 연습을 아주 잘 한 덕분에 그 사이 사이에 끼어 사는 플라타너스에서 사는 풀벌레들의 아침수다라든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굳어 버린 시선에 무표정으로 뒤바뀜, 나무 그늘아래에서 부채들고 앉은 노인들의 빠른 속도에 뭉게진 표정등... 유행은 너무 익숙하게 쫒기듯이 챙긴다. 남이 가진 것은 더 부러워 하는 성질은 더욱 드세진다.  어떤 것  하나도 잊지 말아야 하는 헤어진 연인들과 같은 속성에 치부하기도 한다. 이 모든것이 내 생활에 구석 구석에 자리를 잡아 여름 습기먹는 벽에서  퍼지면서 스멀스멀 살고 있는 곰팡이처럼 면적이 넓어지는 것을 안다. 다만 알고만 있을 뿐. 그들을 어찌 할 텐가... 엄두도 못내는 가슴팍이 적은 이유로 그저 한숨만 내쉬는 옹졸한 하루들이 마른 버즘처럼 푸석푸석 하다.

 

그래서 이럴땐 근처 나의 가까운 여행지를 설정한다.

되레 남들이 비행기타고, 아니면 배를 타고. 아니면 그 비싼 기름을 태우고 손수 오는 곳인데.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친숙한 여행을 늘 혼자 떠난다. 만만하다.

 

선사시대에 너른 초원에서 고인돌을 세워 무덤이라고 표시한 곳부터.

몇 백년까지의 자취를 고스란히 묵상을 하듯이 조용히 살고 있다.

이런 곳에 이웃을 두고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번잡한 곳에서 한 여름 늦더위에도 겨울에 매미소리를 지금 듣는가? 한 마디 던지는 한  선사의 화두에

여름에 북풍이 창문을 두두리는 달빛을 보는 가?등  익숙한 느림의 선배들이 살고 있었던 곳을 한 번 또 가본다.

 

혹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없을 듯 싶다. 모두가 관광이 목적이라면 다른 애기지만.

내 발걸음이 흙을 밟고 싶을 때가 따로 있고 아직 그렇지 않다면 더욱 기다리라는 늦은 예보일 수도 잇다.

무엇이든지 때와 장소는 알맞게 열리고 닫는다.

 

이제 나도 그 동안 기다려온 한 장의 엽서나. 이쁜 꽃우표에 푸른잉크 소인을 찍혀 빨간 우체통에 넣고 싶다.

비록 조금 불편함이 있는 주고 받기는 내가 먼저 해야 할 것이 기에..